경영진의 방패역할을 하는 투자자

헤지펀드 행동주의는 21세기의 지배구조 논의에서 핵심적인 주제에 속한다. 이들의 행동은 경영진에 대립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은 거꾸로 경영진의 방패역할을 하는 투자자, 즉 validation capital에 관한 최근 연구를 소개한다. Alon Brav, Dorothy Lund & Edward Rock, Validation Capital (2021). Brav교수는 저명한 재무관리 학자이고 나머지 두 사람 역시 이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유명한 회사법교수이다.

논문은 먼저 validation capital의 최근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2014년 Trian이란 헤지펀드가 Bank of New York Mellon이란 은행의 주식을 매집하여 압력과 설득을 통해서 경영상의 변화를 끌어내고 한 명의 이사를 파견하는데 성공했다. 그 직후 다른 헤지펀드가 은행주식을 매집하여 경영진 교체 등 보다 과감한 변화를 추구하자 Trian이 나서서 경영진을 옹호하였고 결국 위임장대결은 무산되었다. 그 후 5년 반 사이에 은행주식은 약31달러에서 약 55달러로 상승함으로써 은행과 Trian은 모두 이익을 거두게 되었다.

방패투자자는 위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회사실적이나 주주가치제고에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부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긍정적 사례에서는 방패투자자들이 경영진과 외부투자자사이의 정보비대칭을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들은 경영진 전략의 타당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나아가 부당한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경영진을 보호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모든 주주들의 이익을 증진한다. 반면에 부정적 사례에서는 방패투자자들이 경영진에게 여러 형태의 “뒷돈”(side payment)을 받는 대가로 비효율적인 경영진을 옹호함으로써 기업가치를 하락시킬 수 있다.

논문의 본론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II장에서는 미국시장에서 상당 지분을 보유하는 이른바 블록보유자(bloc holders)의 대두와 방패투자자의 현상을 살펴보고 부정적 사례를 막는 법적, 시장적 메커니즘에 대해서 설명한다. 방패투자자에 대한 뒷돈 지급은 주회사법과 연방 증권법의 두 가지 방면에서 규제된다. 주회사법은 극적인 경우만 억지할 수 있는데 비하여 연방 증권법상의 공시는 보다 적용범위가 넓지만 그래도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저자들은 부정적 사례를 막는 기능은 시장 메커니즘 쪽이 훨씬 크다고 본다. 방패투자자와 경영진 사이의 부정적인 유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방패투자자가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중간에 주식을 처분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방패투자자는 비효율적인 경영진을 옹호함으로써 투자손실을 보거나 명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으므로 상당 규모의 뒷돈을 받지 않고서는 그 역할을 떠맡지 않으려할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시장 메커니즘으로 인하여 부정적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본론의 두 번째 장인 III장에서는 헤지펀드에 대한 뒷돈 제공에 관한 실증적 조사결과를 제시한다. 저자들은 2015년 헤지펀드가 상장회사를 상대로 행동에 나선 사례 279건을 대상으로 뒷돈이 지급되었을 가능성을 조사했다. 이들 건수는 헤지펀드가 경영진의 방패역할을 한 경우 뿐 아니라 헤지펀드가 경영진을 공격하는 경우까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실제보다 수치가 과대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잠재적으로 뒷돈이 제공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펀드가 주식을 시장이 아니라 상대거래로 취득한 경우, 펀드가 비용을 상환받거나 차별적인 이사보수나 자문료를 받은 경우, 펀드가 회사에 주식을 매각한 경우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저자들의 조사결과 뒷돈이 지급되었다고 의심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약 30%(84건)에 지나지 않았는데 대부분 방패활동의 대가로 보기에는 금액이 미흡하거나 대가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있었다.

본론의 세 번째 장인 IV장에서는 간단하게 이 연구의 함의와 장래의 연구과제를 정리한다. 저자들은 방패투자자를 관계적 투자자(relational investors)의 일종으로 파악한다. 논문을 읽으며 개인적으로는 떠올린 것은 일본의 안정주주(stable shareholders)였다. 회사와 거래관계가 있는 주주로서는 주식가치보다는 거래관계를 통한 이익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경영진이라도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 즉 거래관계를 통한 이익이 일종의 뒷돈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에 방패투자자와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방패투자자에 비하여 안정주주는 부정적인 기능을 수행할 위험이 더 큰 반면에 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통제는 더 어렵기 때문에 결국 거래소 규정을 포함한 규범적 통제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편 우리나라의 지배구조환경에서는 방패투자자나 안정주주보다 주식을 보유하는 계열회사의 역할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계열회사는 방패투자자나 안정주주의 경우보다 한층 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우리 정책담당자의 부담이 더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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