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투자와 사적자치의 한계

능력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체결된 계약은 그 당사자들의 관점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의 관점에서도 원칙적으로 효율적이라는 믿음은 자본주의국가의 법제에 공통된 것이다. 이런 믿음은 특히 미국에서 강해서 회사법분야에서는 그것이 계약적 회사관이란 형태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오늘은 사모펀드투자와 관련하여 그런 믿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최신 연구를 소개한다. William W. Clayton, High-End Bargaining Problems, Vanderbilt Law Review (Forthcoming 2022). 저자는 Wachtell, Lipton로펌에서 근무하다 브리감영 대학 로스쿨로 자리를 옮긴 젊은 학자이다.

논문의 본문은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당사자의 능력이 뒷받침되는 경우 계약에 이르는 교섭이 결국 당사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믿음이 두드러진 세 분야(즉 계약법, 유한책임회사(LLC)를 포함한 회사법, 연방증권법)를 살펴본다. II장은 당사자들의 교섭결과를 특히 신뢰할 수 있는 “엘리트 계약공간”(elite contracting space)의 대표적인 예로 사모펀드투자를 들고 그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 근거로 저자는 사모펀드투자에 적용되는 적격투자자요건 외에도 투자담당자의 풍부한 경험, 반복적 행위자로서 당사자들이 명성을 유지할 인센티브 등을 언급한다.

III장에서는 이러한 이상적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사모펀드투자에서의 교섭이 결과와 과정 양면에서 모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로 과반수의 운용사들에서 보수와 비용에 관한 위법이나 중대한 관리상의 하자를 적발한 SEC의 조사결과를 든다. 이어서 저자는 이런 문제점들이 왜 발생하는지에 관해서 기존 학설을 소개한다. 특히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기관투자자의 담당직원과 궁극적인 수익자 사이의 대리문제, 그리고 사모펀드운영자와 사모펀드 자체, 투자대상회사, 유한책임조합원인 외부투자자 사이에 존재하는 다중적인 대리문제에 관한 견해가 흥미를 끈다. IV장에서는 저자가 기관투자자에 대해서 수행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III장에서 제시한 문제점을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끝으로 V장에서는 이처럼 고급의 교섭에서도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점이 제시하는 정책적 함의를 논한다. 저자는 먼저 이른바 적격투자자의 교섭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회사법과 특히 LLC와 관련해서 사적자치의 여지를 폭넓게 인정하는 델라웨어주법의 태도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어서 저자는 현행 증권규제가 사모와 공모를 구별하여 사모의 경우 투자자보호를 투자자 자신의 판단에 맡기는 태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나아가 저자는 현재 사모펀드투자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펀드운용업자와 기관투자자가 취할 수 있는 자발적인 조치와 규제상의 개선책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저금리시대에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사모펀드투자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은 것은 우리나라도 미국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모펀드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수록 투자자에 대한 펀드매니저의 사기적 행위도 늘어날 수밖에 없음은 최근의 사모펀드스캔들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논문은 투자자의 자위능력도 크게 믿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비관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모펀드투자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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