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와 신인의무

우리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금융투자업을 영위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37(1)). 이러한 신의성실의무가 영미법상의 신인의무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설상 다툼이 있지만 나는 부정적이다(김건식/정순섭, 자본시장법 (제3판 2013)) 761면 이하). 그보다는 투자자문업자 등 일부의 금융투자업자만을 적용대상으로 하는 선관의무와 충실의무(§§79, 96, 102)가 더 신인의무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들 의무는 신인의무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아직 판례나 학설에 의하여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그 규범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자본시장법은 이러한 업자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보다 구체적인 규정들을 포함하고 있고 2020년 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더욱 상세한 규정들을 담고 있다. 사정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자본시장규제의 발상지인 미국에서도 이런 일반추상적 의무와 구체적인 행위규정이 공존하고 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다룬 비교적 최근의 미국 문헌을 소개한다. Howell E. Jackson & Talia B. Gillis, Fiduciary Law in Financial Regulation, The Oxford Handbook on Fiduciary Law (Evan J. Criddle, Paul B. Miller & Robert H. Sitkoff eds., OUP 2019). 저자인 Jackson교수(하바드 로스쿨)는 전에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금융규제법 전문가이다(2021.4.5.자). 이 논문이 포함된 Handbook도 블로그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2020.3.27.자).

20페이지로 짧은 편에 속하는 이 논문은 금융규제전반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 초점은 증권업자에 맞춰져 있다. 중요한 것은 신인의무가 적용되는 유형을 조망한 3장과 신인의무의 적용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다룬 4장이다. 3장에서는 신인의무가 적용되는 상황을 3가지로 나누어 각각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①고객과 금융업자사이의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경우; ②규제상의 개방적 기준이 신인의무법에 따라 해석되는 경우; ③규제자체에서 신인의무를 명시적으로 부과하는 경우. ②의 사례로는 33년법 17조와 34년법 15(c)조의 사기금지조항을 근거로 나중에 이른바 “간판이론”(Shingle Theory)으로 알려진 법리를 선언한 Hughes판결을 언급한다. ③의 사례로는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ERISA)을 든다.

4장에서는 신인의무의 적용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몇 가지 구체적인 문제를 논한다. ①신인의무가 인정되는 범위의 문제로 금융업자와 고객 간에 복수의 법률관계가 존재하고 그 중 하나가 신인관계에 해당하는 경우에 나머지 관계에 관해서도 신인의무가 미치는가의 문제를 검토한다. ②신인의무를 어느 정도로 강하게 인정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는 투자자문업자의 경우에는 투자중개업자에 비하여 강한 신인의무가 인정된다고 지적한다. ③신인의무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하여 과당매매, 증권숙지의무, 정보제공의무, 동의확보의무 등에 대해서 설명한다. ④구체적 규제에서 신인의무를 도입하는 경우 그 해석과 관련한 논점을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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