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공시에 대한 발행회사의 손해배상책임

회사의 부실공시를 믿고 주식을 거래하여 손해를 본 투자자에 대해서 회사이사만이 아니라 회사자체의 손해배상책임까지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아직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회사가 자금을 조달하는 발행시장에서는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별로 없지만 유통시장에서 거래에 관여하지도 않은 회사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오늘은 이 논의의 동향을 보여주는 최신 문헌을 소개한다. Martin Gelter, Issuer Liability: Ownership Structure and the Circularity Debate, RESEARCH HANDBOOK ON CORPORATE LIABILITY. Edward Elgar Publishing (Martin Petrin & Christian Witting, eds. 2022, Forthcoming). Gelter교수(Fordham 로스쿨)는 이미 수차례 소개한 바 있는(가장 최근에는 2022.3.26.자) 오스트리아 출신의 비교회사법 전문가이다.

본문이 20페이지에도 미치지 않는 이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2장에서는 국제적인 입법상황을 조망한다. 그에 따르면 유통시장의 부실공시에 대해서도 이사 등 임원과 아울러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대세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실제로 회사만이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경영자가 지급하는 것은 주로 회사가 도산한 경우나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한 합의의 일환으로 행하는 경우에 한한다.

3장에서는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정책적 근거로 투자자손해의 전보과 위법행위 억지의 두 가지에 대해서 검토한다. 먼저 손해전보와 관련해서 회사의 책임은 결국 주주가 부담하는 것이므로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일부 주주의 손해를 다른 주주의 손해로 메우는 것, 즉 손해전가의 문제를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분산투자가 확산된 상황에서는 한 회사에서는 배상을 받는 주주가 다른 회사에서는 손해를 부담하는 쪽에 서기도 할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저자가 순환문제(circularity problem)라고 부르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저자는 손해배상을 받는 자는 매매를 한 투자자에 한하므로 결국 회사의 책임은 매매를 하지 않고 주식을 오래 보유하는 일반투자자가 부담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손해전보의 의미가 퇴색한 상황에서 회사의 책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위법행위 억지이다. 부실공시는 투자자손해만이 아니라 공정한 가격형성을 저해하는 등의 사회적비용을 발생시킨다. 회사책임이 부실공시를 억지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겠지만 회사책임을 묻는 집단소송이 초래하는 비용이 부실공시의 사회적 비용을 초과한다는 비판도 유력하다.

논문의 핵심은 소유구조가 이러한 논의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4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실공시의 억지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회사책임의 실질적 부담주체인 주주가 감독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산투자가 확산된 상황에서는 주주들이 이른바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의 문제 때문에 그런 인센티브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기관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특히 인덱스펀드와 같은 기관투자자들은 감독에 나설 인센티브가 없을 것으로 본다. 반면에 소유가 집중된 회사에서는 대주주가 회사책임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부실공시의 억지에 나설 인센티브를 가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회사책임의 정치경제학이란 제목의 5장에서는 이러한 대주주의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소유가 집중된 나라에서 회사책임을 묻는 소송이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논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과연 대주주의 인센티브와 회사책임을 묻는 소송사이에 저자가 말하는 것 같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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