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소송의 재검토

미국은 증권소송의 천국(또는 지옥)이다. 회사 주가의 급락을 초래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회사의 부실공시가 있었다는 구실로 회사책임을 묻는 집단소송이 제기되곤 한다. 그리하여 미국에서는 “세상만사가 증권사기”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그런 증권소송을 뒷받침하는데 동원되는 법리가 바로 “시장에서의 사기이론”(fraud on the market theory)이다. 오늘은 이러한 증권소송의 남용을 막는다는 관점에서 부실공시에 대한 손해배상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Merritt B. Fox & Joshua Mitts, Event-Driven Suits and the Rethinking of Securities Litigation, Business Lawyer (2022 forthcoming) 저자들은 모두 콜롬비아 로스쿨 교수들로 이 블로그에서 수차 소개한 바 있는 증권법 전문가들이다.

이 논문은 90여 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으로 상세하게 소개할 여유는 없다. 이 자리에서는 일부 논점만을 간단히 정리하기로 한다. 저자들은 앞서 언급한 사고를 계기로 유발된 증권집단소송을 “사고계기소송”(event-driven suits)이라 부르며 재무정보의 부실공시를 근거로 제기한 전통적인 집단소송과 구별한다. 두 부류의 소송은 모두 시장에 대한 사기의 법리로 처리되는데 그것은 특히 사고계기소송과 관련하여 문제가 있으므로 그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저자들은 배상책임의 논리를 파악하여 그 논리를 토대로 사회적후생의 측면에서 언제 책임을 부과하고 언제 책임을 면제하는 것이 좋은지를 검토한다.

전형적인 시장사기소송에서는 부실공시로 인하여 부풀려진 가격으로 취득한 투자자가 진실을 밝히는 후속의 수정공시(corrective disclosure)로 주가가 하락한 경우 손해를 입는다. 사고계기소송에서는 사고위험이 실제보다 낮음을 시사하는 회사의 진술이 일종의 부실공시에 해당한다고 보고 사고를 수정공시에 해당한다고 보아 그 경우에도 시장사기와 마찬가지로 투자자가 손해배상을 주장한다. 다만 사고계기소송에서 사고로 인한 가격하락은 부실공시에 의하여 부풀려진 주가가 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위험이 현실화됨에 따른 것이고 그 규모는 매우 커질 수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증권소송에서의 손해배상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판단에 이르렀다.

①중요한 것은 수정공시 후의 가격하락이 아니라 당초 부실공시가 주가를 일정 금액(inflation threshold) 이상 부풀렸는지 여부이다.

②부실공시로 인하여 주가가 부풀려졌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발행회사가 적극적으로 진실을 말한 경우가 아니라 침묵을 지킨 경우의 주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미국법상 회사는 수시공시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③주가가 부풀려진 정도를 산정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부실공시나 수정공시가 가격에 주는 효과를 대용물로 삼을 수 있다. 보통은 부실공시의 가격효과가 더 정확하지만 시장이 발행회사의 침묵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에는 수정공시의 효과가 때로는 더 정확하다.

④그러나 수정공시의 효과도 다른 문제점을 수반한다. 이미 시장이 수정공시된 사항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수정공시의 효과가 미미하여 그것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발행회사의 수정공시가 다른 부정적 정보를 포함하는 등의 경우에는 효과가 과도하게 크게 나타날 것이다. 결국 수정공시의 효과도 특히 사고계기소송의 경우에는 주가가 부풀려진 정도를 측정하는 대용물로서 신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수정공시에 따른 주가하락에 의존하여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현재의 실무는 중대한 문제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저자들도 사고계기소송에서 일종의 부실공시가 존재함을 인정하며 그것을 법적으로 잘 규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경우에 집단소송에 의존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할 경우와 SEC의 규제나 형사처벌에 맡길 경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 구분에 적용할 규칙들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부실공시가 가격에 미친 효과가 일정 한도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이 부정된다. 부실공시의 가격효과가 일정한도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시정공시의 가격효과를 대신 참고할 수 있다.

이상이 논문의 절반에 해당하는 IV장까지의 내용이다. 이어서 V장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사고계기소송에 주는 함의를 논하고 그것을 토대로 6건의 시고계기소송을 비판한다. 끝으로 VI장에서는 각하신청실무를 비롯한 시장사기소송의 일부 소송법적 논점에 대해서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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