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렇지만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상장회사이면서도 지배주주 내지 모회사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법을 연구하던 초기에는 그런 회사의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하느라 골몰했다. 당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적절한 참고문헌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특히 이용이 가장 편리한 일본문헌이 드물다는 점이 아쉬웠다. 일본학계에서 논의를 찾기 어려웠던 주된 이유는 아마도 그 문제가 당시 일본에서는 현실적으로 별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정이 크게 변화하여 이제는 상장자회사의 문제가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늘은 그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최근의 일본문헌을 소개한다. 白井正和/朽網友章, 親会社のある上場会社における少数株主保護法制の検討 ─締出しの際の子会社取締役の義務および上場子会社のガバナンス改善の手段を中心に─, 상사법무 2313호(2022.12.15.) 4면. 이 글도 예의 “회사법ㆍ가버넌스의 과제”시리즈에 속하는 것으로 앞의 저자는 쿄토대학 교수이고 뒤의 저자는 변호사이다.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지배주주가 상장자회사의 소수주주를 축출함으로써 완전자회사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회사 이사가 부담하는 의무에 관한 부분이고(II장), 다른 하나는 이러한 축출거래를 넘어서 일반적인 상장자회사에서 지배주주의 권한남용을 통제하는 방안을 검토한 부분이다(III장). II장에서 저자들은 자회사이사가 축출거래와 관련하여 이사의 선관주의의무의 일부로 이른바 공정가치이전의무를 부담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축출거래에서의 공정가치이전의무를 MBO거래의 경우와 대비하며 검토한다. 저자들은 법원이 가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절차적 공정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고 고 주장한다.
III장에서는 먼저 지배주주의 신인의무에 대한 논의를 검토한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이 부분에 관심이 많았는데 논문에서는 이 논의의 개요를 잘 정리하고 있다. 저자들은 신인의무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도입하는 것에는 여전히 소극적인데 그 근거를 그룹내거래가 보편적인 일본의 경제현실에서 찾고 있다. 즉 지배주주의 신인의무를 인정하게 되면 주주에 의한 남소의 위험 때문에 그룹내거래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지배주주의 신인의무를 도입하는 대신 그것을 기능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을 검토한다. 예컨대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모회사에 대해서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방안, 독립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방안 등을 논한다.
이 논문을 읽고 난 느낌으로는 일본에서 지배주주의 신인의무에 대한 반감은 30년 전에 비하여 훨씬 완화된 것 같다. 현재로는 내용이 막연한 일반개념을 도입하는 대신 구체적인 맥락에서 지배주주의 행동을 통제하는 개별규정을 도입하는 방식의 점진주의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배주주의 행동을 통제할 필요성이 더 높아지고 또 점진주의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는 상황이 도래하는 경우에는 마침내 지배주주의 신인의무가 명시적으로 도입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