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Pargendler교수는 이미 이 블로그의 단골출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활약은 다방면에 걸치지만 특히 회사의 법인격에 관한 연구가 괄목할만하다. 그에 관한 일부 논문들은 이미 이곳에서 소개한 바 있다(예컨대 2020.5.27.자, 2022.1.29.자). 오늘은 회사의 법인격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여겨지는 그의 최신작을 소개한다. Mariana Pargendler, The New Corporate Law of Corporate Groups(2023) 이번 글은 특히 2022.1.29.자 포스트에서 소개한 논문(Mariana Pargendler, The Fallacy of Complete Corporate Separateness (2021))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은 논문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회사집단에 회사법을 적용하는 문제, 그의 표현으로는 회사집단에 존재하는 법인격의 테두리(entity boundaries)가 회사법상 어떻게 취급되는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인 예로는 모회사 주주가 (모회사의 법인격을 투과하여) 자회사와의 관계에서 대표소송제기권, 장부열람권, 자산양도승인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들 수 있다. 한편 저자는 논문의 도처에서 Eisenberg교수의 명저, The Structure of the Corporation(1976)을 인용하고 있다. 40년 전 그 책의 번역서(송상현/김건식, 주식회사법리의 새로운 경향(경문사 1983)를 출간한 바 있는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남다른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서론에서 논문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①회사법이 이중대표소송이나 자회사의 중요재산매각 등과 관련하여 법인격의 테두리를 점점 더 무시하는 쪽으로 변화해왔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법인격의 테두리가 무시되는 현상을 법인격의 투명성(entity transparency)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저자는 법인격의 투명성이 법인격부인법리에서 보는 것처럼 극적인 상황에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보호의 고려에서 너그럽게 인정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②법인격의 투명성이 수용되는 정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③나라마다 법인격의 무시는 법분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주주유한책임과 관련해서는 법인격부인을 쉽게 인정하지 않지만 모회사 주주의 자회사에 대한 주주권행사와 관련해서는 법인격의 투명성을 너그럽게 인정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법인격에 의한 법적 분리는 논리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④저자는 일반적으로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의 문제를 집단(enterprise)적 접근과 개별(entity)적 접근의 대립의 문제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사고는 너무 거칠고 거창한 것이라 평가하고, 문제영역에 따라 법인격의 투명성을 달리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회사법분야에서의 법인격의 테두리의 문제를 법경제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자산의 분리(asset partitioning)와 규제상의 분리(regulatory partitioning)를 구분하고 전자는 법인격부인법리의 적용이 문제되는 상황인데 비하여 후자는 법인격의 투명성이 문제되는 상황으로 파악한다. II장에서는 법인격의 테두리가 어느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지를 비교법적으로 검토한다. 주로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인도, 브라질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밖에 이스라엘이나 한국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III장은 1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장으로 공동결정제도의 문맥에서 법인격의 투명성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본다. IV장에서는 경계적인 분야로 ①신인의무와 ②자회사 이사선임의 두 가지 상황을 설명한다. ①과 관련해서는 모회사 이사의 자회사에 대한 감시의무와 자회사 이사가 그룹전체의 이익을 면책사유로 주장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언급한다. V장에서는 법인격의 투명성을 평가하고 VI장에서는 법인격의 투명성이 회사법이 아닌 다른 법분야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