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집단에서 흔히 발견되는 지배주주의 사익편취거래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는 아직 우리 법제도의 중요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상법의 자기거래규정(§§398, 542-9)이다. 그러나 절차에 중점을 둔 이 조항의 실효성은 결국 지배주주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확보할 수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업무집행지시자 등의 책임에 관한 §401-2이다. 지배주주에게 업무집행지시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지시”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현실적으로 그 증명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법원이 지시의 추정을 너그럽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김건식/노혁준/천경훈, 회사법(7판 2023) 507면) 오늘은 그와 관련하여 다소 희망을 갖게 만드는 최근 대법원판결을 소개한다. (대법원 2023. 3. 16 선고 2022두38113 판결[공2023상, 716]) 이 판결에 대한 평석으로는 노종화, 사익편취 거래의 관여 행위 판단 및 제도 개선, 경제개혁이슈 2023-05호(2023.05.24.)
사안에서 문제된 것은 태광그룹의 지배주주가 계열회사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회사로부터 김치와 와인을 구매하도록 한 것이 공정거래법상의 부당이익제공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현행법 §47(4)). 원심은 문제의 거래가 경영기획실 주도 하에 이루어진 것이고 계열회사의 규모에 비추어 그 거래가 지배주주의 관여 없이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로 그룹에 중요한 결정사항이었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지배주주의 관여를 부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배척하며 “특수관계인이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에게 부당한 이익제공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특수관계인이 해당 거래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하였다면 그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시하였다. 대법원은 이어서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관여’하였는지 여부는, 행위주체와 행위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동기와 경위, 행위의 내용 및 결과, 해당 행위로 인한 이익의 최종 귀속자가 누구인지,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지, 특수관계인 외에 실행자가 있는 경우 실행자와 특수관계인의 관계 및 평소 권한 위임 여부, 실행자가 특수관계인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해당 행위를 하는 것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가능한지, 해당 행위를 할 동기가 있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때 특수관계인은 기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관여”의 해석에 대한 이 판결의 유연한 태도는 청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분명히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평석의 저자는 이러한 해석이 형사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 관심이 쏠리는 쪽은 이러한 법원의 태도가 과연 상법상 업무집행지시자의 해석에서도 유지될 것인지의 문제이다. 그에 관해서는 반드시 낙관하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우선 위 판결에서 문제된 것은 “관여”의 해석이니 업무집행지시자의 “지시”를 해석할 때에도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관여가 지시에 비하여 더 융통성 있는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양자의 테두리가 그렇게 명백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드러내놓고 지적하기는 거북하지만 이러한 유연한 해석이 결국은 주심인 김선수대법관의 가치관 내지 정치적 성향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법관이라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 판례의 전개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