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법상의 회사법정주의(numerus clausus)

민법은 이른바 물권법정주의(numerus clausus)를 채택하여 물권을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185조). 물권법정주의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회사법상으로도 회사(조합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의 종류를 당사자가 임의로 창설하는 것을 금하는 법정주의가 존재한다. 오늘은 이에 관한 독일의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HOLGER FLEISCHER, Der numerus clausus im Gesellschaftsrecht: Rechtsdogmatik – Rechtsvergleichung – Rechtsökonomie – Rechtspolitik, ZGR 2023, 261-297. 저자는 블로그에서 수차 소개한 바 있는 독일 회사법학계의 대표주자이다(최근의 예로 2023.5.6.자).

회사법정주의는 회사법상의 기본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법에 명시적인 조항이 없고 또 별로 연구된 바도 없다. 이 논문은 회사법정주의를 법리적, 비교법적, 법경제학적, 역사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I장은 독일 회사법상 회사법정주의의 법리적 기초를 설명한다. 회사법상 계약의 자유는 여러 형태의 회사 사이의 선택을 허용하는 것이고 새로운 회사형태의 창설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법정주의에 위반한 회사라고 해서 무효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원이 무한책임을 지는 회사형태로 간주함으로써 회사법정주의를 실현한다. 회사법정주의를 정당화하는 근거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지 않지만 거래의 안전이나 채권자보호를 드는 것이 보통이다. 회사법정주의는 법률상의 회사형태를 변형하는 것까지 금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GmbH & Co. KG, Publikums-KG, 자연인 무한책임사원이 없는 KGaA 등과 같은 기존 회사형태의 변형을 인정한다.

III장은 회사법정주의가 적용되고 있는 상황을 비교법적으로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 새로운 회사형태의 창설을 너그럽게 허용하던 스페인, 덴마크 등 일부 국가에서도 이제는 회사법정주의를 택하는 쪽으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IV장에서는 회사법정주의에 대한 법경제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저자는 선행연구가 축적된 물권법정주의를 모델로 삼아 거래의 안전, 시스템운영비용의 절감, 표준화를 통한 정보비용의 절감 등의 관점에서 회사법정주의를 정당화한다. 회사법정주의를 적용하는 경우 회사형태의 자유로운 창설이 제한됨에 따른 불편이 초래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불편은 그리 크지 않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이유로는 조합의 경우 상당한 사적자치의 여지가 있는 점, 법적으로 허용되는 회사형태의 수가 상당히 많은 점, 필요하면 의회에서 새로운 회사형태를 추가할 수 있는 점 등을 든다.

끝으로 V장에서는 회사법정주의에 따라 허용되는 회사형태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회사형태가 증가하는 요인으로는 의회의 입법과 법원의 승인 외에 외국법에 의하여 설립된 회사의 영업활동을 허용하는 EU법원의 Centros판결을 든다. 이어서 의회가 법으로 회사형태를 폐지한 사례들을 간단히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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