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의결권의 문제는 내가 교수 초년병 시절 상당히 고심했던 주제였다.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당시 우리 자본시장에서 이른바 1% 무의결권우선주가 확산된 현상이었다. 1987년 “무의결권우선주식에 대한 소고”(증권 52호 1987.6)와 1988년 “주식과 의결권”(임원택교수화갑기념논문집)이란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들 두 논문의 내용은 1994년 “무의결권우선주에 관한 연구”라는 상장협연구보고서의 일부로 포함되었다(회사법연구II 116-258면). 이들 논문에서는 무의결권우선주만이 아니라 차등의결권주식과 같은 주식과 의결권 사이의 근본적 논점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1인1의결권에서 1주1의결권을 거쳐 차등의결권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 소개한 것은 물론이다. 오늘은 이러한 의결권제도의 역사적 전개를 포괄적인 시각으로 분석한 최근 논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Sarah C. Haan, Voting Rights in Corporate Governance: History and Political Economy, Southern California Law Review, Forthcoming (2023) 저자는 버지니아주 소재 Washington & Lee 로스쿨에서 회사법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저자는 19세기이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주주의 의결권과 관련된 변화를 역사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그러한 변화와 관련하여 주목할 주체로 경영자, 대주주(현재는 자산운용자), 일반주주를 든다. 이들 세 주체사이의 세력다툼이 그런 변화의 저변에 깔려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의 변화는 크게 다음 세 가지 차원에서 발생하였다. ①위임장에 의한 투표(proxy voting), ②의결권의 최고한도를 부과하는 제도로부터 1주1의결권원칙으로의 전환, ③집중투표제의 확산. 이들 세 가지 차원에서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논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한 변화에 이어서 에필로그 격으로 universal proxy를 비롯하여 의결권과 관련된 최근의 변화를 언급하는 것으로 논문을 마친다.
저자에 따르면 ①의 변화는 일반주주의 의결권행사를 촉진하는 것이 기대되었지만 실제로는 경영자가 위임장제도를 통해서 오히려 일반주주들을 회사경영에서 소외시키고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용되었다. ②의 변화는 이러한 위임장제도의 현실에 대한 대규모주주의 불만에 대응한 것이었다. 19세기초기에는 많은 회사들이 대규모주주의 의결권에 대해서 상한을 두었다. 대규모주주들은 경영자에 의한 위임장남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1주1의결권원칙의 도입을 지지하였다. 그런데 1주1의결권원칙의 도입은 대주주에 대한 일반주주의 상대적 지위를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③의 변화는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
논문의 마지막 장인 IV장에서는 의결권제도를 둘러싼 최근의 변화를 조망한다. 이 변화의 동인으로 작용하는 것도 역시 앞서 언급한 세 주체사이의 세력다툼이다. 추가로 IT기술과 같은 기술발전도 그러한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저자는 이른바 Big Three를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에 주식보유가 집중되는 현상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이러한 기관투자자들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경영자가 동원한 수단이 바로 복수의결권주식이다. 저자에 따르면 2021년 미국내의 기업공개중 23%가 차등의결권구조를 택하였다고 한다. 기관투자자의 대두에 따라 일반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이 도입되고 있다. 저자는 가장 최근의 변화로 의결권을 명부상 주주인 기관투자자가 아니라 실질주주인 투자자에게 행사시키는 의결권의 투과(pass-through)제도와 기관투자자의 의결권행사를 투자자가 지시하는 제도(client-directed voting)를 언급한 후 끝으로 회사로 하여금 위임장에 반대파주주들이 추천한 이사후보명단도 포함시켜 주주들이 반대파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universal proxy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