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이사회의 의사결정

오늘날 IT기술의 발전이 법에 미치는 영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회사법 분야만 하더라도 주식과 사채의 디지털화, 인터넷을 통한 주주총회, 인공지능의 활용 등 그 영향의 범위와 심도는 더 이상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회사법적 관점에서 검토한 독일의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Katja Langenbucher, Künstliche Intelligenz in der Leitungsentscheidung des Vorstands, ZHR 187 (2023) 723-738. 블로그에서 이미 한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저자는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회사법과 자본시장법을 가르치는 중견 여성학자이다(2021.9.8.자).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경영이사회(Vorstand)(이하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관한 독일 주식법의 구조를 간단히 언급한다. II장에서는 주식법상 이사회의 위임금지에 관한 76조와 인공지능에 대해서, 그리고 III장에서는 이사회결정의 준비과정에서의 AI활용과 93조 1항의 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해서 각각 검토한다.

I장에 의하면 주식법은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두 측면에서 규율한다. 먼저 76조 1항은 이사회가 회사를 자기책임 하에 지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의사결정에 대한 이사회의 ownership이란 영어단어로 표현한다. 한편 93조 1항 2문에 따르면 경영상 결정(unternehmerischen Entscheidung)의 경우에는 이사가 단순히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데 저자는 이를 trust란 용어로 표현한다.

II장에서는 의사결정에 대한 이사회가 ownership을 가져야 한다는 명제에 불구하고 (사고과정을 설명할 수 없는) 이른바 black box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검토한다.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이사회가 궁극적인 지휘책임을 지는 한 종업원이나 외부의 제3자에 대한 위임이 허용된다는 점에서 의사결정의 준비과정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은 최종적 의사결정을 이사회가 내리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이처럼 의사결정을 준비와 결정의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견해는 준비과정이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하면 작위적이라고 판단한다. 대안으로 저자는 구체적인 결정에서 위임되는 부분의 성격과 비중에 따라 이사의 책임을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며 의사결정의 준비과정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검토한다. 끝으로 저자는 위임이 76조 1항의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는 이사회가 인공지능이 결정한 것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에만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이사회의 인공지능활용이 주의의무의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라고 지적한다.

III장에서는 주의의무 위반의 문제를 다루는데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유형화하고 각 유형에 대해서 상이한 수준의 사법심사를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여기서 그 두 축에 해당하는 것이 I에서 설명한 trust와 ownership이다. 즉 이사회의 결정은 법과 주주가 경영자에게 허용하는 trust의 수준에 따라 구분할 수 있고 아울러 경영자가 그 결정에 대해서 갖는 ownership의 정도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경영자의 ownership이 강하고 그에 대한 trust가 높은 경우인 신제품개발과 관련한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해서는 경영판단으로 보아 법원에 의한 심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경영자의 ownership이 약하고 그에 대한 trust가 낮은 경우인 법의 준수와 관련한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해서는 법원에 의한 심사를 엄격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인공지능의 활용을 통하여 얻은 정보의 타당성을 이사회가 판단하는 문제에 대해서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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