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전략적 컴플라이언스

준법감시란 다소 위압적인 표현으로 번역되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무렵이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생경한 내부통제(internal control)란 말과 함께 등장한 컴플라이언스는 이제 우리 기업에서도 – 특히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관심은 그 발상지인 미국에서도 아직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런 관심은 실무계에서 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여전한 것 같다. 오늘은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법학계의 최신 연구동향의 단면을 보여주는 논문을 소개한다. Geeyoung Min, Strategic Compliance, 57 UC Davis Law Review 415 (2023) 저자인 민지영 교수는 이 블로그에서 수차 언급한 적이 있고(예컨대 2021.2.6.자) 논문도 소개한 바 있지만(2021.4.30.자) 이번 논문은 특히 학자로서의 원숙미를 물씬 풍기는 역작으로 배운 점이 많았다.

회사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은 상당 부분 경영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이 논문은 경영자가 실제로 그 재량을 어떻게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담고 있다. 저자는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의 핵심을 구성하는 회사의 내부방침(internal corporate policies)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회사의 내부방침은 이른바 사적조정(private ordering)의 한 수단에 해당한다. 저자는 S&P 500사의 웹사이트에서 수집한 내부자거래와 관계자거래에 관한 내부방침들을 토대로 내부자거래와 관계자거래에 관한 내부통제의 강도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결과 전자에 대한 통제는 매우 엄격하고 후자에 대한 통제는 상대적으로 완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분야에 따라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경영자가 사익을 위해서 재량을 행사했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적인 법집행의 강도”(external enforcement intensity)를 고려한 “전략적인” 결정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논문 제목을 “전략적인 컴플라이언스”라고 붙인 이유이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사적조정의 관점에서 본 회사의 내부방침에 대해서 설명하며 내부방침의 문서화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고 있는 현상과 내부방침이 실제 채택되는 양상에 대해서 살펴본다. II장에서는 먼저 내부자거래와 관계자거래에 대해서 실제로 기업들이 내부방침에서 취하는 태도의 차이를 상세히 보여준 후에 그것이 경영진의 전략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내부자거래의 경우에는 회사들이 금지대상인 내부자거래에 다른 공개회사주식의 거래를 포함시킬 정도로 매우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데 반하여 관계자거래의 경우에는 일정한 유형의 거래를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금지대상거래의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정책적 함의를 다룬 III장에서는 먼저 정보전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내부방침의 기능은 회사 내에서 임직원에 대해서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고 권한위임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위임 받은 임직원으로부터 경영진과 이사회로 향하는 정보의 상향전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내부방침으로 일정한 범주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거나 허용하게 되면 이러한 정보전달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하지만 이 부분의 서술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 저자는 이어서 내부방침의 효과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회사, 주주, 규제당국 등에 관한 정책제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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