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집단과 법인독립원칙

상법은 독립된 회사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오늘날 특히 대기업의 경우에는 여러 회사들이 기업집단을 구성하여 경제적으로는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 이처럼 법적 형식과 경제적 실질이 괴리되는 상황에서는 법적용과 관련하여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법인격이 부인되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유럽에서는 특히 경제법영역에서 기업집단에 속하는 한 회사의 위법행위를 근거로 다른 계열회사에게도 책임을 묻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오늘은 이런 상황을 다룬 독일학자의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Dörte Poelzig, Das konzernrechtliche Trennungsprinzip und Sanktionsdurchgriffe im (europäischen) Wirtschaftsrecht, Aktengesellscaft 4/2023, 97. 블로그에서 이미 두 차례 소개한 바 있는(예컨대 2024.1.30.자) 저자는 최근 활약이 두드러지는 함부르크대학의 소장학자이다.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들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는 법인독립원칙(Trennungsprinzip)이 적용된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는 계열회사의 법위반에 대해서 기업집단을 하나의 기업으로 보아 손해배상책임과 아울러 벌금을 부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카르텔금지위반에 대한 책임과 외국자회사의 인권이나 환경침해에 대한 모회사의 민사책임에 관한 논의이다.

이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I장에서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법인독립원칙의 경제적, 법적 의의에 대해서 설명한다. III장에서는 각국의 회사법에서 인정하는 법인격부인법리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

논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IV장에서는 유럽 경제법상 개별 계열회사의 법위반에 대한 제재를 다른 계열회사에 확장적용하는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는 제재의 확장적용을 ①자회사의 위법행위를 근거로 하는 모회사에 대한 제재와 ②모회사의 위법행위를 근거로 하는 자회사에 대한 제재로 나누어 검토한다. 그러나 ②는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주로 문제되는 것은 ①이다. 저자는 ①을 진정 제재확장(echter Sanktionsdurchgriff)과 부진정 제재확장(unechter Sanktionsdurchgriff)으로 양분하여 설명한다. 전자에 속하는 예로는 카르텔법상 자회사의 위법행위에 따른 모회사의 책임을 든다. 카르텔법이 모회사에게 자회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를 부과하는 법리적 근거는 카르텔법이 수범자를 개별법인이 아니라 경제적단위로서의 기업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찾는다. 한편 후자에 속하는 사례로는 은행감독법의 경우를 든다. 은행감독법상 경영이사는 자기 회사에서의 컴플라이언스만이 아니라 자회사에서의 컴플라이언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진다. 이 경우를 부진정 제재확장으로 분류하는 것은 수범자가 모회사이지만 의무의 내용이 자회사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진정 제재확장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V장에서는 제재를 확장적용하는 것의 정당성에 대해서 논한다. 법인독립원칙은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법적으로도 정당화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예외는 비례성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저자는 그런 전제 하에서 위의 ①과 ②의 정당성에 대해서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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