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제382조의3에 의하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이사의 충실의무라고 불리는 이 의무와 관련해서는 현재 회사와 아울러 주주도 이사의 의무의 대상임을 명시하려는 다양한 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이다. 마침 최근 영미법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룬 논문이 발표된 바 있기에 오늘은 그것을 소개하기로 한다. Susan Watson & Lynn Buckley, Directors’ Positive Duty to Act in the Interests of the Entity: Shareholders’ Interests Bounded by Corporate Purpose (2024). 저자들은 각각 뉴질랜드 Auckland대학에서 교수와 강사로 근무하는 학자들이다.
영미법상 이사는 회사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 성실하게 행동할 의무(duty to act in good faith and in the best interests of the company)를 진다. 이 의무는 우리 상법상의 충실의무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미법국가에서 널리 채택되고 있다. 편의상 이 의무도 충실의무라고 부르기로 한다. 논문은 충실의무의 기본적 구조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의 개정논의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충실의무조항의 기본구조에 대한 저자들의 결론이다. 저자들은 이사의 충실의무는 주주집단이 아니라 그와 구별되는 법인으로서의 회사에 대해서 부담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물론 이사는 주주전체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해야 하지만 그 의무는 어느 특정 시점의 주주집단이 아니라 회사에 대해서 부담한다는 것이다. 또한 논문은 주주우선주의와 회사의 목적과의 관계를 검토하며 회사의 목적에서 고려하는 사회적 이익이 주주우선주의의 제약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이 포스트에서는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기로 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5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2장에서는 이사가 충실의무를 부담하는 상대방을 동인도회사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한 후 위와 같은 결론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충실의무와 관련하여 주주우선주의(shareholder primacy)의 의미를 분석한다. 저자들은 주주우선주의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분류한다.
①주주이익극대화를 추구하되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는 주주가 아닌 이사로 보는 경우(예컨대 Bainbridge의 이사우선주의)
②주주이익극대화를 추구하되 이사가 도덕이나 윤리적 관행과 법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추구하는 경우
③주주이익극대화를 추구하되 회사의 궁극적인 의사결정권은 주주에게 부여하는 경우(예컨대 Easterbrook & Fischel의 계약설적 회사이론)
④위 ③에 따르되 도덕이나 윤리적 관행과 법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따르는 경우(예컨대 Friedman의 견해).
저자들에 의하면 회사에 별개의 법인격을 인정하는 관점은 ③과 ④와 같은 주주자치를 인정하는 견해, 그리고 회사를 계약의 묶음으로 보는 법경제학적 회사관과는 조화되기 어렵다. 또한 계약설적 회사관에 따르면 현재 주주의 단기적인 이익을 억누르고 미래 주주의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저자들은 회사가 주주들과 별개의 법인격이란 점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만 특정 시점의 주주집단이 아니라 주주이익을 포함하는 회사조직을 충실의무의 적용대상으로 삼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4장에서 저자는 이사의 충실의무는 역사적으로 개인에 대해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그 목적에 대해서 부담하는 것이라는 점을 충실의무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토대로 상세히 살펴본다. 충실의무의 연원이 선서(oath)라는 점에서 종교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은 이 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5장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처음 선언한 판결인 The Charitable Corporation v Sutton판결을 설명하고 6장은 충실의무와 회사의 목적과의 관계를 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