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는 미국에서도 지배주주에 관한 논의가 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예컨대 2021.7.28.자). 그러나 지배주주가 관련된 이익충돌거래에 관한 논의에 비해서 지배주주의 신인의무에 관한 논의는 많지 않다(예외적으로 2021.12.11.자). 오늘은 지배주주의 신인의무를 다룬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J. Travis Laster, The Distinctive Fiduciary Duties That Stockholder Controllers Owe, NYU JOURNAL OF LAW & BUSINESS, Vol. 20:461(2024).
우리나라에서 최근에는 지배주주가 신인의무를 부담하는가(또는 부담시켜야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별로 없는 것 같다. 해석론이나 입법론적으로 지배주주의 신인의무를 논할 때 긍정설을 취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회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지배주주에게 이사와 같이 신인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 과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바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유익하다. 미국에서는 지배주주가 이사와 동등한 신인의무를 부담한다는 전제(이른바 동등주장(equivalency claim))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지배주주의 의무가 엄격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지배주주로 보는 주주를 좁게 인정하는 판례들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저자는 일반적 견해와는 달리 델라웨어 판례법에 따르면 지배주주의 신인의무는 이사의 신인의무에 비하여 덜 엄격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따라서 지배주주를 좁게 해석할 필요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논문은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7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동등주장과 그 영향을 설명한다. II장에서는 지배주주의 신인의무를 검토하기 앞서 기준점이 될 이사의 신인의무를 주의의무(duty of care)와 충성의무(duty of loyalty)로 나누어 살펴본다. 저자는 특히 신인의무와 관련해서는 행동기준(standard of conduct)과 심사기준(standard of review)의 구별을 강조한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행동기준으로는 높은 기준이 요구되지만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심사기준을 적용할 때에는 보다 너그러운 기준이 적용된다. 또한 강조할 것은 미국법상의 주의의무와 충성의무의 구분은 우리 상법상의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의 구분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국법에서의 논의를 그대로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것에는 주의를 요한다는 점이다. III장에서는 신인의무, 그중에서도 충실의무와 관련하여 그 충실의 정도에 따라 상정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자기거래금지, 수익자에 대한 배신의 금지, 수익자의 최선의 이익추구, 객관적 결과의 달성, 자기희생)을 제시하고 이사의 충실의무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논한다.
논문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IV장이다. IV장에서는 델라웨어 판례를 토대로 지배주주의 신인의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검토한다. 저자는 이사와 지배주주의 신인의무는 충실의무의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 차이를 ①지배주주의 이익충돌거래와 ②지배주주의 일방적 행위로 나누어 검토한다. ①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이사의 충실의무는 회사와 전체주주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점을 선의로 믿어야 하는데 비하여 지배주주는 고의나 중과실의 행위로 회사나 소수주주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점이다. ②와 관련해서는 의결권행사, 주식의 매각, 소의 제기로 나누어 충실의무의 내용을 분석한다. 의결권행사와 관련해서 저자는 현상유지를 위한 투표(즉 반대투표)에서는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해도 무방하지만 변화를 위한 투표(즉 찬성투표)에서는 다른 주주 이익의 침해가 금지된다고 본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V장에서 저자는 동등주장이 신화에 불과한 것임을 지적하고 VI장에서는 이사와 지배주주의 신인의무에 차이가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끝으로 VII장에서는 이러한 논의의 규범적 시사점을 정리한다.
참고로 이 논문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Bainbridge교수의 블로그에 후속 논의가 업로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