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법의 역사적 전개 – 정치경제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오늘 소개할 글은 Harvard Law School Mark Roe교수의Three Ages of Bankruptcy이다. Roe교수는 지배구조와 도산법의 전문가로 법과 경제적, 정치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역사적, 거시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장기이다. 이 글의 작성연도는 2017년으로 SSRN에 표시되어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직 출판이 되지 않았다. 출판은 되지 않았지만 도산법의 기본적인 이슈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시사하는 바가 많아 소개하기로 한다.

이 글의 초점은 도산법 중에서 주로 회생절차인 Chapter 11에 맞추고 있다. 제목은 도산법의 세 시대라고 하고 있지만 세 시대 외에도 도산법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도 담고 있기 때문에 도산법의 역사적 전개라는 제목을 붙여보았다. 이 글은 먼저 도산법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도산절차가 없다면 채권자들이 마치 뱅크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채무자재산에 대한 집행을 서두르기 때문에 회생가능한 기업도 해체될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은 채무자는 물론 채권자에게도 좋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채무자의 종업원 나아가 국가경제에도 좋지 않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드는 것이 철도회사이다. 부실에 빠진 철도회사의 집단적인 채권관계를 질서 있게 처리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 바로 도산절차이다. 결국 도산절차의 핵심은 자동적 집행정지(automatic stay)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생겨나는 문제가 해체를 면한 계속기업의 지배체제를 어떻게 가져가는가 하는 것이고 저자는 그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실기업의 회생을 위해서 19세기 후반에 처음 활용된 것은 형평법상의 재산관리(Equity Receivership)제도이다. 재산관리는 형식상으로 새로 설립되는 회사에 기업이 매각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으나 원래의 채권자들이 새 회사의 채권자나 주주로 전환되었고 법원이 회사에 대한 집행을 정지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그 후의 도산절차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 형평법상의 재산관리제도의 문제점은 뉴딜시대에 이르러 크게 부각됨에 따라 결국 입법이 시도되게 되었다.

저자는 1938년 도산법 제정이후부터 시대를 3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제1단계를 뉴딜시대 도산법 제정으로, 제2단계는 2차대전 후, 그리고 제3단계는 20세기말 기업인수합병이 성행하던 시기로 잡고 있다. 제1단계에서는 정부 개입을 긍정적으로 보던 뉴딜시대의 영향을 받아 국가기관, 즉 법원과 SEC에 의한 관리가 중심이 되었다. 2차대전 후인 제2단계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의한 해결을 신뢰하는 분위기를 반영하여 채무자와 채권자들 간의 합의에 의한 권리재조정을 중시하였다. 제3단계에서는 M&A가 널리 확산된 시기라 시장에서의 기업평가를 신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산기업을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인수자에게 넘기는 것이 모든 이해관계자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라 M&A에 대한 의존도가 상승하였다.

저자는 아직 제4단계를 논하기는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재 제도를 위협하는 두 가지 요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첫째는 파생상품거래나 Repo거래와 같이 도산절차에서 제외되는 거래가 늘고 있다는 점으로 저자는 이 현상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이는 금융거래와 도산에서 아마도 가장 큰 이슈로 이미 많은 논의가 있으므로 이곳에서 더 이상 논하지 않는다. 흥미를 끄는 것은 둘째 요소로 기업의 아웃소싱현상이 가속화됨으로써 도산절차의 의미가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 업종으로 제약업을 들고 있다. 도산법이 등장한 것은 여러 재산으로 구성된 기업에서 일부 재산이 채권자에 의해 처분됨으로써 기업으로서 작동이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현대 기업은 점점 핵심기능위주로 개편되고 나머지 기능은 아웃소싱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으므로 과거와 같이 일부 재산의 처분으로 기업 전체가 마비되는 일은 줄어들고 있으며 따라서 도산절차의 필요성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끝으로 저자는 여러 외국에서 Chapter 11을 모방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도산법의 변화를 초래한 경제적, 정치적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기대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 회생절차에서도 M&A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예컨대 홍성준, 회생절차 M&A의 실무상 쟁점, 우호적 M&A의 이론과 실무 제1권(천경훈 편 2017) 49면) 특별히 우리나라와 미국의 도산법 현실이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이 논문 전반에서 Clark교수의 회사법에 관한 논문(Robert Charles Clark, The Four Stages of Capitalism: Reflections on Investment Management Treatises, 94 HARV. L. REV. 561 (1981))에서 시사를 받았음을 밝히고 있는 점이다. 이 논문은 자본주의의 4단계를 주식소유구조와 회사지배를 중심으로 고찰한 것인데 나도 감명을 받았던 터라 여러 곳에서 인용한 바 있다. 당시 나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는 2단계에서 3단계 사이에 머무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 40년이 지난 현재도 그 면에는 별 진전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도산법분야에서는 우리나라도 Roe교수가 말하는 3단계에 이미 도달한 것 같은데 이처럼 지배구조 내지 소유구조와 도산법현실 사이에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한번 생각해 볼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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