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격이 회사재산과 주주재산을 분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유용한 기능이 남용되는 경우에는 각국 법원은 법인격을 부인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법인격은 책임재산을 분리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규제대상을 분리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즉 주주와 회사가 법적으로 별개의 주체로 인식된다는 점에 근거하여 규제의 적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규제의 회피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주주와 회사의 동일성을 인정함으로써 규제목적을 달성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오늘 소개하는 Pargendler교수의 논문(Veil peeking: The Corporation as a Nexus for Regulation(2020))에서는 이런 현상을 법인격부인을 의미하는 veil piercing이란 친숙한 용어대신 veil peeking이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veil peeking은 실제 예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그리고 여러 법분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으로 연구된 바 없고 법인격부인에 속하는 것처럼 잘못 다루어졌다.
이 논문은 서론과 결론 외에 6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규제대상의 분리(regulatory partitioning)를 서론적으로 살펴본 1장에 이어 2장은 veil peeking의 등장과정을 서술하고 3장에서는 법인격부인과의 주된 구조적 차이를 고찰한다. 본론은 4장, 5장, 6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4장에서는 veil peeking의 분석에 들어가 먼저 veil peeking이 문제되는 유형들을 구분한 후 그 문제에 대처하는 veil peeking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제시한다. ➀veil peeking의 수단에 의한 구분으로 입법에 의한 경우와 법관의 해석을 통한 경우의 구분이다. ➁주주에 친화적인지 여부에 따른 구분이다. ➂veil peeking이 당해 회사의 구체적 상황에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행해지는지 아니면 구체적 상황에 따라 행해지는지 여부에 따른 구분이다.
5장에서는 규제대상의 분리와 veil peeking에 대한 법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먼저 규제대상의 분리의 비용과 편익을 분석하고 veil peeking할 때의 고려사항을 제시한다. 저자는 veil peeking의 요건은 법인격부인의 경우와는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인격부인에서는 “재산의 혼용”이 중요하지만 veil peeking에서는 “회사에 대한 지배”를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당해 법분야의 구체적인 입법목적에 비추어 veil peeking의 비용과 편익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거의 100년 전에 Latty교수가 한 다음 말을 인용하고 있다. “회사가 주주와 분리된 독자적인 존재인지 여부의 문제는 진공상태에서(in vacuo) 묻거나 답할 수 없다.” 6장에서는 현행법상 veil peeking이 행해지는 모습을 회사법 뿐 아니라 인종차별, 독점규제, 국적법, 국제제재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소개한다.
이 논문의 대상인 veil peeking은 학계와 실무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현상이고 법인격부인과 veil peeking은 다른 기준에 의하여 처리해야한다는 저자의 주장도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veil peeking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시도한 (아마도) 최초의 논문으로 회사와 주주에 대한 법적용이 문제되는 여러 분야에 걸친 수많은 사례들을 꼼꼼히 검토한 역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Palgendler 교수는 영향력 없는 논문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미 슈퍼스타인 학자이지만,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두 개의 가장 최근 논문들은 특히 더 반향이 큰 역작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최신 논문들을 이렇게 선생님의 시각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늘 많이 배우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분은 나이도 별로 많은 것 같지 않은데 커버하는 범위가 넓어서 점점 더 존경심이 강해지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