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가 Corporate Governance에 관한 Restatement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얼핏 듣고 흘려 넘겼는데 마침 Bainbridge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그에 관한 포스트를 올렸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그 포스트는 ALI가 추진 중인 작업에 관해서 보다는 1994년에 발표한 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ance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담고 있다. 저자는 Principles가 실제 회사법의 발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혹평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당초 많은 관심을 받으며 시작된 프로젝트가 실패하게 된 과정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프로젝트의 원래 목표는 경영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었는데 최종 결과물은 초안에서보다 훨씬 후퇴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프로젝트는 1980년 시작하여 1994년 최종안이 발표되었는데 그 진행과정에서 두 가지 압력이 존재했다고 한다. 하나는 당시 급속히 영향력이 커지고 있던 법경제학을 신봉하는 학자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ALI의 다수를 점하는 실무가들이었다. 법경제학 추종자들은 경영자에 대한 견제는 시장의 압력으로 충분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경영자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는 강행규정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대하였다. Principles의 대표작성자인 Eisenberg교수는 강행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전통적인 회사법학자였지만 이들의 반대로 인하여 최종안에서는 다소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영향력이 컸던 것은 실무가들의 저항이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경영자책임을 묻는 것을 용이하게 하는 개혁은 로펌 변호사들에게도 유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경영자들이 이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Principles초안에 반대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Restatement를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중간에 Restatement란 말이 빠지게 된 것도 그 프로젝트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10년 전 출간한 “기업지배구조와 법”이란 책 서문에서 Eisenberg교수와의 만남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이것만 마치면 계약법연구에 주력하겠다고 하며 Principles의 1차 검토안이 담긴 하얀 책자(1982)를 보여줬다. 그 후에도 1994년 최종안이 발표되기까지 수차에 걸쳐 중간 검토안이 간행되었고 나는 그 책자들도 빠짐없이 우편으로 주문하여 구입했다. 그런데 정작 완성된 Principles가 예상과 달리 별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은 의아하면서도 실망스런 일이었다.
ALI 홈페이지에서는 2019년 시작된 이번 프로젝트가 Restatement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Principles가 발표된 1994년 이후만 해도 Corporate Governance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그에 관한 논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번에는 Edward B. Rock교수(NYU)가 대표작성자로 Jill Fisch교수(Penn)와 Marcel Kahan교수(NYU)와 함께 작업을 맡고 있다. 모두 법경제학에 정통한 학자들이지만 특히 Rock교수는 시장의 압력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어떤 작품이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또한 이번 작업도 만약 Principles프로젝트에서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이들이 과연 끝까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끝으로 사족 한마디. 저자는 블로그에서 자신의 친구가 모범회사법과 ALI Restatement 중 어느 것이 더 쓸모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묻는 짓궂은 질문에 대해서 즉답은 피하면서 모범회사법은 약35개주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마디로 단정하고 있다. 이는 결국 델라웨어 회사법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