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법이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변화의 동력을 제공한 것은 우리나라에 자금을 공급한 IMF와 World Bank 같은 국제금융기구였다. 이들 국제금융기구들 외에 OECD를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들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 회사법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은 이 현상을 정면으로 다룬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Mariana Pargendler, The Rise of International Corporate Law (2020). 저자인 Pargendler교수는 이미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예컨대 2020.5.10.자 포스트).
저자는 각국의 회사법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크게 경쟁과 조정(coordination)을 들고 있는데 국제기구의 영향은 조정에 속한다. 저자는 국제기구의 영향을 받은 회사법을 국제회사법(international corporate law)이라고 부르며 국제회사법이 두드러진 분야로 ➀사외이사, ➁관계자거래, ➂ESG, ➃인권 등을 들고 있다. ➀,➁가 전통적인 투자자보호, 즉 주주이익과 관련된 것인데 비하여 ➂, ➃는 회사활동의 외부효과, 즉 이해관계자이익에 관련된 것이다. 저자는 국제회사법의 대두는 다음 두 가지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➀국경을 넘은 외부효과(interjurisdictional externalities)와 ➁이익집단에 의한 정치적 포획(political capture by domestic interest groups). ➁는 늘 하던 이야기지만(예컨대 2020.5.10.자 포스트) ➀은 새로운 관점이다. 원래 회사활동의 외부효과는 회사법이 아니라 환경법, 노동법 등 다른 법에 의하여 규율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부정적 외부효과가 주로 외국에서 발생하는 경우에는 개별 국가 관점에서는 구태여 그것을 규율하는 법을 제정할 인센티브가 없으므로 국제회사법과 같은 국제적인 조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이다.
국제회사법은 단순히 영미법모델의 기업지배구조를 확산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국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법적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비교회사법연구에서 국제회사법의 역할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저자는 국제회사법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국제적 차원에서의 회사관련입법의 효용과 한계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I장은 국제회사법을 정의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제회사법과 EU회사법의 비교가 흥미롭다. II장에서는 1990년대 이후 국제회사법의 부상에 대해서 살펴본다. 그와 관련하여 IMF, OECD, World Bank, UN 등 국제기구의 주요 조치들을 서술하고 이들이 국내법과 지배구조관행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III장에서는 IOSCO, Basel Committee, Financial Stability Board 등 회사법분야의 국제적 모범규준제정기관의 활동과 국제경제협력합의 등을 통해서 국제회사법이 확산되는 과정을 조망한다. IV장에서는 국제회사법의 한계로 ➀규제다양성의 훼손, ➁민주주의와 정책적 독립성과의 충돌, ➂집행상의 곤란, ➃국내외의 정치적 포획 등에 대해서 설명한 후 국제회사법의 장래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V장은 결론으로 앞으로의 연구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국제회사법의 출발점을 아시아금융위기에서 찾고 있다. 아시아금융위기의 돌풍을 고스란히 맞았던 우리나라의 경험이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 관한 언급이 도처에서 등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느낌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마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