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 방문자들은 대개 알고 있겠지만 송상현 선생의 회고록, “고독한 도전, 정의의 길을 열다”(나남)가 출간되었다. 책의 홍보를 겸해서 소감 한 마디 남기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전기나 회고록을 좋아해서 이제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 개인사의 우여곡절과 그 과정에서의 인간 내면의 변화가 그 자체로 재미있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살아온 시대와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좋았다. 그제 받은 터라 아직 전부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선생의 회고록 내용은 내가 읽은 어느 회고록에 못지않게 다채롭고 풍부하다(색인까지 1063면). 법학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다방면에 걸쳐 최고수준으로 활약하신 선생의 경력을 담다보니 그렇게 되기도 했겠지만 선생의 박람강기(博覽強記), 예리한 관찰력과 꼼꼼한 기록습관의 뒷받침을 받은 성과라고 할 것이다. 일부 내용은 동아일보사의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기도 해서 나도 그것을 전부 읽은 바 있다. 책을 받고 얼른 훑어보니 이번 회고록은 새로운 내용이 많이 추가되어 반가웠다. 일화 중에는 당연히 나도 아는 것들도 없지 않은데 압축적으로 기술된 경우가 많았다. 선생의 기억을 다 반영하려면 아마도 책이 몇 배는 더 두꺼워졌을 것이다.
회고록에서 선생은 이곳저곳에서 당신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 만난 “은인”들의 크고 작은 도움들을 기술하고 있다. 선생을 비교적 잘 안다고 여기던 나는 선생의 눈부신 일생에도 그런 힘든 순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선생의 빼어난 성취 뒤에는 선생의 탁월한 재능과 노력은 물론이고 고비마다 도움의 손길을 뻗쳐준 은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것이야말로 회고록에서 얻는 재미이자 교훈일 것이다. 선생은 인생의 굽이굽이에 받은 여러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지만 선생을 가까이서 모신 내가 보기에 사실 선생이 일생동안 주위 사람들에 베푼 도움은 그 몇 십배, 몇 백배가 넘을 것이다.
ICC소장임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선생을 뵐 때면 회고록 출간을 권했다. 고단한 활동을 겨우 마치시고 몸도 완전히 편치 않으신데 부담을 드리는 것이 송구스럽기는 했지만 선생의 희귀한 경험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역시 책임감이 남다른 선생은 이제 마지막 숙제까지 훌륭하게 마치시는 모범을 보이셨다. 이제는 무거운 짐을 벗으셨으니 아무쪼록 좋아하는 일만 하시면서 편안하게 지내시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