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과 기업집단

오늘은 경제발전과 기업집단과의 관계를 분석한 경제학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Luis Dau, Randall Morck & Bernard Yeung, Corporate Governance, Business Group Governance and Economic Development Traps (2020). 공저자들 중 Morck교수는 몇 년전 서울에서 열렸던 학술행사에서 만난 적이 있는 캐나다 학자로 특히 기업소유구조연구로 유명하다. 세계 각국의 기업집단에 대한 연구도 많다보니 우리 재벌에 대한 사정에도 밝고 이 논문에서도 우리 재벌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들의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한 기업이 성장하려면 (부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기업네트워크가 결여된 후진국 경제에서는 기업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진국 함정을 벗어나기 어렵다. 설사 다른 기업이 존재하더라도 이들이 전략적 행동을 시도할 위험이 있으므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기업네트워크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등장하는 것이 기업집단이다. 그리하여 후진국이 중진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기업집단이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과정에서 의미있는 것은 개별기업의 governance가 아니라 기업집단의 governance이다. 그러나 이런 기업집단구조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선진국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이른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즉 혁신적인 신생기업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기존기업을 대체함으로써 전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기업집단구조에서는 신생기업이 성장하고 기존기업이 도태되는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 이런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력집중을 완화하고 개별기업중심의 경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먼저 2장과 3장에서는 후진국 경제에서 기업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특히 기업의 전략적 행동과 공무원의 부패가 어떤 식으로 기업네트워크 형성을 저해하는지를 보여준다. 4장에서는 기업집단구조를 활용하여 후진국 함정을 탈출한 일부 국가들의 사례를 서술한다. 저자들은 이미 1840년대에 그런 전환을 마치고 산업화를 이룬 벨기에를 비롯한 구미 선진국과 아울러 한국과 일본의 사례까지 차례로 소개한다. 한국에 관한 절에서는 LG그룹의 형성과정에 대한 구자경 회장의 회고담이 길게 인용되어 있다. 5장에서는 기업집단이 어떻게 중진국 함정으로 작용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고찰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소수의 기업집단이 정치적 힘을 이용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체제, 즉 폐쇄적 접근 체제(limited access order)를 유지한다. 이런 상태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적 파괴를 방해하므로 기업집단중심의 governance에서 개별기업중심의 governance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그런 전환이 진행된 과정을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서 살펴본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을 새롭게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라고 하면서 개별기업중심 governance로의 전환이 진행 중인 나라로 들고 있는 점이다. 결론에 해당하는 6장은 앞 장에서의 서술을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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