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즘 미국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Nine West판결과 관련하여 Ann Lipton교수의 블로그 포스트를 소개하기로 한다. Shareholders, Stakeholders, and Nine West (Business Law Prof Blog 2021.3.6.) 그의 글이 초점을 맞춘 것은 Nine West판결 자체가 아니라 신인의무와 채권자이익이다. 그러나 판결자체가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많은 LBO에 관한 것이고 작년 말 선고이후 미국 법조계와 학계에서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안의 골자를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글을 시작하기로 한다.(판결에 대한 보다 상세한 소개는 2021.1.22.자 하바드 블로그 포스트 참조)
사안에서 PEF(“S”)는 LBO를 통해서 Nine West(“회사”)를 인수하였다. 전체 거래는 S의 자회사와 회사가 합병하고 합병 후 회사가 기존 고수익자산을 S의 계열사에 저가로 매각하는 두 단계로 구성되었다. 회사는 이 거래 후 4년 만에 도산절차개시신청을 하였는데 도산절차에서 위의 자산매각거래는 사기적양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그 거래 전부터 회사에 채권을 갖고 있던 채권자들이 도산수탁자(bankruptcy trustee)를 통해서 회사이사들을 상대로 신인의무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를 연방뉴욕남부지방법원(SDNY)에 제기하였다. 사건을 맡은 Rakoff판사는 아마도 연방지방법원판사로는 가장 명망이 높고 널리 존경을 받고 있는 판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된 피고 이사들은 합병 전 회사의 이사들로 합병 후 자산매각거래를 담당한 이사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원고는 피고 이사들이 합병 후 자산매각거래로 인하여 도산이 초래될 위험이 있음을 알면서도 합병을 승인한 경우에는 합병 후 이사들의 신인의무위반을 방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제소한 것이다. Rakoff판사는 피고 이사들이 그 거래에 이해관계가 있거나 매수한 계열사와 관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들의 소각하신청을 기각하였다. 미국에서는 피고의 소각하신청이 기각되어 trial절차가 시작되면 현실적으로 피고가 화해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결정은 LBO거래를 크게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야기했다. (앞서 인용한 2021.1.22.자 하바드 블로그 포스트는 바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이런 판결의 결론보다 Rakoff판사가 이사가 신인의무를 부담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저자는 델라웨어판례법상 신인의무의 상대방은 “회사와 그 주주”이고 회사는 기본적으로 주주와 동일시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주의할 부분은 신인의무의 상대방과 신인의무의 내용 사이의 구분이다. 이 구분은 미국에서는 특별히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다. 즉 미국에서는 이사가 주주이익을 추구할 의무를 주주에 대해서 부담하므로 그 의무위반 시에는 당연히 주주도 직접 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법상으로는 이사에게 주주이익추구의무가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이사가 직접 주주에 대해서 그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사의 의무위반이 인정되더라도 주주가 직접 의무위반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다행히 상법 제401조가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주주가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도산의 맥락에서는 이런 설명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먼저 도산을 방지할 의무는 이사의 신인의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도산은 주주이익에도 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Nine West사안에서와 같이 회사의 위험한 결정으로 채권자이익은 위태로워지지만 주주는 큰 이익을 얻는 경우이다.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신인의무의 내용을 주주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잔여청구권자이익의 극대화로 본다는 델라웨어법원의 Quadrant Structured Products Co., Ltd. v. Vertin, 102 A.3d 155 (Del. Ch. 2014)판결을 인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주주들이 아무리 원하더라도 이사는 잔여청구권자 이익을 위해서 도산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Nine West판결에서 회사는 델라웨어주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델라웨어주법이 적용될 여지는 없었다. 그 때문인지 Rakoff판사는 대신 이사의 의무는 회사에 대한 것이라고 선언하고 회사는 주주와 채권자의 이익을 포함한다는 입장을 채택하였다. 그는 피고 이사들이 당해 거래가 회사의 장래에 미칠 영향을 숙고하지 못함으로써 신인의무를 위반했고 합병 후 회사 이사들의 의무위반을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즉 그는 그 거래가 회사 주주에게는 이익이 되었지만 회사도산을 초래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의무위반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저자는 Rakoff판사가 이사의 신인의무가 이사가 채권자이익보다 주주이익을 우선하는 것을 막는다고 보면서도 그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Nine West판결에서 부각되는 궁극적인 물음은 이사가 주주에 대한 의무를 핑계로 채권자에 대한 의무를 어느 정도까지 소홀히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 갖고 있지 않다고 하며 몇 가지 소견을 밝히고 있다. ➀주주이익을 위한다는 이유로 이사의 위법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➁이사는 주주이익에 합치하는 경우에는 계약을 위반할 수 있다(이른바 효율적 계약위반). 즉 위반을 평가할 때 계약은 제정법과 달리 법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기적양도를 금지하는 도산법규정을 어떻게 보아야할지는 모르겠다고 하고 있는데 저자의 블로그 포스트에 대한 Raz변호사의 코멘트에 의하면 그 위반은 위법에 해당하므로 신인의무 위반을 구성한다고 볼 것이다.
저자의 글에 대해서는 Bainbridge교수도 흥미로운 블로그 포스트를 업로드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소개는 생략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