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기업 경영자의 기회주의와 채권자 보호

2020.8.31.자 포스트에서 소개한 Jared A. Ellias & Robert Stark, Delaware Corporate Law and the ‘End of History’ in Creditor Protection (2020)은 델라웨어주법원이 채권자보호를 이사의 신인의무 같은 회사법리로 보호하는 대신 회사법 외부의 도산법, 사기양도법, 대출계약에 맡기는 역사적 과정을 고찰하였다. 과연 그런 회사법 외부의 채권자보호장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오늘은 이 물음을 다룬 같은 저자들의 논문을 소개한다. Jared A. Ellias & Robert J. Stark, Bankruptcy Hardball, 108 CALIF. L. REV. 745 (June 2020)

저자들의 결론은 외부의 채권자보호장치는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으므로 법원이 해석을 통해서 채권자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실기업에서 채권자, 주주, 경영자 사이의 이익충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문제이다. 저자들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영자가 채권자이익을 희생시키며 사익을 도모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으며 그 주된 원인은 채권자보호에 소극적으로 변화한 법원의 태도라고 주장한다.

논문의 본론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I장에서는 부실기업 경영자의 기회주의(control opportunism)의 문제를 설명한다. II장에서는 이런 경영자 기회주의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채권자를 위한 신인의무의 부상과 몰락과정에 대해서 고찰한다. 이 부분은 지난 8.31자 포스트에 소개한 논문에서는 물론이고 과거 내 논문(도산에 임박한 회사와 이사의 의무, 상사법연구 30권3호(2011) 273면)에서도 다룬 바 있다.

본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III장이다. 결국 Gheewalla판결에서 채권자를 위한 이사의 신인의무를 부정하며 델라웨어법원이 근거로 든 것은 채권자이익이 도산법, 사기양도법, 대출계약에 의해서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저자들은 이런 Gheewalla판결의 전제가 잘못된 것임을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상세히 논증하고 있다. III.A에서는 계약적 보호의 한계를 고찰한다. 저자들은 채권자가 사전적으로 경영자 기회주의의 유형을 예상하여 계약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설사 채권자가 위험을 인식한 경우에도 계약상 대책을 마련해서 도산회사를 대리하는 노련한 변호사를 상대하는 것은 어렵고 어차피 회사가치가 급속히 감소하는 마당에 계약에 근거한 소송의 위협도 위력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III.B에서는 도산법적 보호의 한계를 고찰한다. 저자들은 도산절차에서는 채권자 보호 외에 일자리확보나 회생촉진 등 다른 정책목표도 작용하며 이들 다른 정책목표 때문에 채권자이익이 손상될 수 있음을 사례를 통해서 제시한다. 특히 채권자이익을 보호하는 주된 장치로 널리 인식되고 있는 사기적양도규정이 도산절차에서 쉽게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IV장에서 저자들은 채권자의 계약상 권리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으면 채권을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법관들이 구태여 새롭게 채권자를 위한 신인의무라는 개념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채권자의 계약상의 권리를 무력화하려는 경영자의 기회주의적 행동에 대해서 기존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채권자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저자들은 법관이 경영판단원칙을 적용하는 경우에도 경영자 기회주의의 위험을 의식하여 좀 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사기적양도를 주장하는 사안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법관들이 특별히 신경을 써야한다고 역설한다.

이 논문에서 채권자보호가 문제되는 경우로 인용된 사례는 많은 경우 LBO와 연관이 있다. 미국에서 LBO를 제약하는 주된 장치는 바로 사기적양도법리라는 점에서 사기적양도법리가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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