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업지배구조의 한 축은 이사회가 맡고 있고 그 이상형은 이른바 감독형 모델(monitoring model)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형 이사회는 미국에서 아직 통설적 위치를 고수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은 몰라도 이론적으로는 아직 지향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미국에서의 감독형 이사회가 후퇴하고 과거에 지배했던 경영자중심주의(managerialism)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논한 최근 논문을 소개한다. James D. Cox & Randall S. Thomas, Resisting the Return to Managerialism: Institutionalizing the Shareholder Voice in the Monitoring Model (2020). 저자들은 모두 이 블로그에서 수차 소개한 바 있는 미국 회사법 및 증권법의 전문가들로 경영자중심주의의 부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제목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들이 논문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뉴 패러다임(New Paradigm)과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ESG이다. 저자들은 이들이 궁극적으로 경영자중심주의로의 회귀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먼저 과거 경영자중심주의에서 감독형이사회로 변화한 과정을 되짚는 것으로 시작한다(I장과 II장). 저자들은 기관투자자에 주식소유가 집중되는 현상을 변화의 동인으로 파악하고 헤지펀드를 비롯한 기관투자자 행동주의의 대두와 그 성과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간단히 소개한다. 저자들은 기존 감독형이사회모델이 주식소유가 분산된 시절에 형성된 것으로 주주들의 역할을 경시했는데 이제 기관투자자의 관여로 인하여 그 효용이 한층 개선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사회의 시간, 정보, 전문성의 한계를 기관투자자가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거이다.
이어서 저자들은 기관투자자 행동주의에서 위협을 느낀 경영자들의 노력으로 생겨난 몇 가지 규제상의 변화를 살펴본다(III장). 의결권자문기관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규제강화, 대량보유보고제도의 강화, 주주의 이사추천권을 도입하는 부속정관 제안절차를 규정한 SEC규정의 위법을 선언한 판결 등이 그런 변화의 예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주주의 목소리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저자들이 보다 역점을 둔 것은 주주들의 목소리를 약화시키기 위한 두 가지 움직임으로 이른바 뉴 패러다임과 ESG를 비판하는 IV장이라고 할 수 있다. 뉴 패러다임은 친 경영자 입장에서 단기주의경영 비판의 선봉에 선 Martin Lipton변호사가 주도한 백서의 제목이다. 그 백서에서는 유능한 독립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와 경영진이 수립한 장기계획에 따라 회사를 경영하는 경우 주주들은 회사를 지지하고 단기이익을 노린 행동가들의 간섭을 배척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이 주장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지만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주문사항을 보면 결국 이들의 영향력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다. 뉴 패러다임 백서는 주주이익에 전적으로 집중하기보다 이해관계자 이익을 널리 고려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ESG와 상통한다. 백서는 나아가 주주들은 ESG에 관한 경영진의 판단을 존중해야한다고 하는데 저자들은 이는 1980년대 중반 미국의 많은 주에서 적대적 기업인수에 대한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서 제정되었던 “이해관계자 조항”과 비슷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파악한다. 저자들은 이어서 이해관계자이익을 강조하는 견해의 문제점을 정리한다.
저자들은 헤지펀드를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최근의 변화는 감독형이사회의 작동을 저해하고 경영자중심주의의 부활을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주주행동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로부터 얻는 주주들의 보상을 증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대량보유보고제도의 강화를 반대하고 거꾸로 5%요건을 10%로 완화할 것을 주장한다.
추기(2022.2.15): 저자들은 최근 이 논문의 수정판을 제목을 바꾸어 출간하였다. A Revised Monitoring Model Confronts Today’s Movement Toward Managerialism, 99 Texas Law Review 1275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