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권의 관점에서 본 주식매수청구권

미국에서 합병은 소송을 수반하는 경우가 잦다. 최근에는 합병을 저지하거나 손해배상을 구하는 분쟁보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른 가치평가에 관한 분쟁이 많다고 한다. 오늘은 주식매수청구권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그 범위를 축소할 것을 주장하는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William J. Carney and Keith Sharfman, The Exit Theory of Judicial Appraisal (2021). 저자들은 만난 적은 없이 글을 통해서만 알고 있는 회사법학자들로 전통적인 스타일을 따르고 있어 우리에게는 오히려 친숙한 감을 준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들은 합병과 같은 거래에 불만 있는 주주들이 주식을 처분하거나 현금을 받는 것이 가능한, 즉 퇴사가 가능한 경우에는 따로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여러 가지를 제시한다. ➀연혁적으로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식시장이 발달하기 전에 소수주주에게 퇴사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하여 인정된 것이다.(저자들은 이를 퇴사이론(exit theory)이라 부른다. ➁현대 회사법은 이익충돌거래의 경우 주주의 이익을 잘 보호한다. ➂법원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인한 가치평가 때문에 많은 자원을 소모할 뿐 아니라 그 결정을 잘 할 수 있는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들은 주로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델라웨어주 회사법이 주주의 퇴사가 보장되는 현금합병의 경우에도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을 비판하며 델라웨어주법이 그런 내용으로 되어있는 것이 그런 분쟁을 통해서 수입을 얻는 변호사들이 입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논문의 본론은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I장은 주식매수청구권의 연혁과 근거에 대해서 살펴본다. II장은 주식매수청구권이 처음 생겨난 때와는 달리 주식시장이 발달하고 합병대가로 주식만이 아니라 현금까지 허용되는 과정과 그에 따라 주회사법이 공개회사의 경우 주식매수청구권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저자들은 델라웨어주 회사법이 현금합병의 경우 주식매수청구권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 개정을 담당한 위원회 위원들이 변호사로서 자신들의 직업적 이익을 감안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들은 60년대말부터 주식매수청구권을 소수주주의 착취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견해(저자들은 이를 反착취이론)이라고 부른다)가 힘을 얻게 됨에 따라 가치평가에 “공정”이란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공정이 강조되면서 가치평가는 시가와 무관한 것이 되었고 결국 시장이 아니라 법원이 결정하게 됨으로써 변호사와 전문가만의 돈벌이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III장에서는 주식매수청구권 외에 주주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역할을 살펴보고 가치평가와 관련한 법원의 어려움을 고찰하는데 솔직히 III장의 서술은 체계적으로 좀 혼란스런 감이 있다. IV장은 매우 짤막한데 델라웨어주법이 공개회사의 현금합병의 경우에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왜 배제하지 않는지를 현지 변호사업계의 이익집단적 행동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V장에서는 법원이 주식가치를 평가하는 현행 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해서 검토한다.

확실히 주식매수청구권은 장점과 단점이 아울러 존재하는 제도이고 그 장단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만약 주주이익을 보호하는 다른 장치가 잘 작동하는 경우에는 우리도 주식처분이 용이한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구태여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할 필요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합병은 이익충돌 위험이 큰 계열회사간 합병이 대부분이고 특히 주주이익을 보호할 장치가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주식매수청구권에 대한 저자들의 비판에 선뜻 동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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