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Benjamin Friedman, 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 (Knopf 2021)

오늘은 오래만에 非법학분야의 신간 한권을 소개한다. Benjamin Friedman, 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 (Knopf 2021). 금년 1월에 나온 이 책을 만나게 된 계기는 동경대학에서 운영하는 유투브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이 책에 대한 저자의 발표를 듣게 된 것이다. 하바드대학의 거시경제학교수인 저자는 전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워낙 전달력이 좋고 품위가 있어서 단번에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내용이었다. 책 제목만 보면 막스 베버의 명저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떠오를 것이다. 베버가 칼뱅의 개신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하여 저자는 스코트랜드의 장로교, 그 중에서도 “Moderates”라고 불리는 교파의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이 교파는 신자의 행동이 구원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보는 칼뱅신학과는 반대로 신자의 행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교파가 스코트랜드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 18세기에 경제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흄과 아담 스미스가 그 신학의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경제학이론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흄과 스미스는 별로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이었음에도 그 당시에는 워낙 종교의 영향이 강했던 시기라 이들도 당시의 통설적 견해에 부지불식간에 그 영향을 받았다는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기독교가 당초 스코트랜드에서는 경제학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는데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일반 시민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에서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빈곤계층이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자유방임을 추구하는 공화당을 더 지지하는 현상도 종교의 영향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경제학자가 집필한 것이지만 그 시야는 좁은 의미의 경제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광범하다. 종교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기독교에 대한 서술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그밖에도 종교, 철학, 학문분야 사이의 상호관련에 대해서도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가 경제학의 탄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로 당시 대학과 지식인사회가 학문분야별로 독립되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얽혀 지적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환경을 들고 있다. 그런데 책의 말미에 담겨있는 후기를 보면 저자 자신이 오래 몸담고 있는 하바드대학의 지적 분위기도 18세기에 비할 수는 없더라도 상당히 학제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는 종교적 내지 도덕적인 요소를 수반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케인즈, 슘페터 등 저명 경제학자들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오늘날 ESG나 이해관계자이익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종교적 연원을 고려하면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나는 요즘 산보할 때 함재봉 교수의 “한국사람 만들기”라는 시리즈의 강연을 즐겨 듣고 있다. 그의 季氏인 연세대 함재학 교수는 20여 년 전 하바드를 잠시 방문했을 때 가깝게 지냈던 인연이 있지만 정작 본인과는 30년쯤 전에 한번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을 뿐이다. 함교수는 지난 1~2년 사이에 비슷한 주제를 대담, 강연, 그리고 단행본 등 다양한 형태로 발표하고 있는데 그 커버하는 범위가 실로 광범하다. “한국사람 만들기”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설명하면서 두 나라의 근대사에 대해서도 상당한 비중으로 언급하고 있다. 평소 두 나라의 사정에 대해서는 나름 관심이 없지 않았던 터이지만 함교수의 강연을 듣고 배운 점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함교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그의 노력에 경의와 감사를 표하고자 하는 뜻도 있지만 아울러 그의 강연과 위에 소개한 책 사이에 접점이 있기 때문이다. 함교수는 며칠 전부터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는 것을 계기로 종교개혁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개신교의 역사를 돌아보고 있다. 우연히도 바로 어제 스코트랜드 장로교의 탄생에 대한 강연이 업로드 되었다. 과연 그가 다음 강연에서 Moderates신학이나 경제학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게 될 것인지, 언급을 하는 경우 그 내용은 앞의 책과 어떤 차이를 보일지 궁금하다.

One thought on “신간소개: Benjamin Friedman, 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 (Knopf 2021)

  • 자본주의는 분명히 ‘종교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뱅이나 베버가 말한 종교(청교도)와 자본주의의 관계때문이기 보다는, 자본주의의 작동원리(modus operandi)가 ‘종교적’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무신론자/불가지론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종교의 의식은 너무나 인위적이고 임의적이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인위성과 임의성 때문에 굉장히 규칙적이고 정규적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는 사람들이 자본의 ‘진정한 가치’를 부여/환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자본화(capitalization)’일 것입니다. 자본화에서 자본의 가치는 미래의 수익을 할인율(discount rate)로 나누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하지만 미래의 수익은 현재의 수익으로부터 추정되는 것이고(이러한 측면을 케인즈가 일반이론을 통해 매우 정교하게 서술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할인율은 – 금융 분야에서는 각종 수학적, 통계적 도구들을 이용해 ‘정당한’ 숫자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 결국엔 임의의 한 숫자일 뿐입니다. 자본의 ‘참된’ ‘진정한’ 가치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실제로 중요한 것은 상대적인 가치의 위계인 것이고요.)

    자본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 하에서 이루어지는 자본화는 이러한 측면에서 ‘종교적’인 의식(ritual)의 측면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 매우 잘 서술한 글들이 있습니다:

    https://economicsfromthetopdown.com/2021/06/02/the-ritual-of-capitalization/
    https://economicsfromthetopdown.com/2019/10/01/has-wealth-gone-digital/

    자본화와 자본주의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Jonathan Nitzan과 Shimson Bichler의 “Capital as Power: A Study of Order and Creorder”라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routledge.com/Capital-as-Power-A-Study-of-Order-and-Creorder/Nitzan-Bichler/p/book/9780415496803

Leave a Reply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2020 Copyright KBL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