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족기업에서의 승계는 조직의 존립을 좌우하는 문제이다. 특히 가족기업인 재벌의 비중이 절대적인 우리나라에서 경영권승계는 단순히 개별 그룹의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적 관점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오늘은 이 문제에 관해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주는 최신 문헌을 한편 소개한다. Benjamin Means, Solving the ‘King Lear Problem,’ 12 U.C. Irvine L. Rev. (forthcoming 2021). (이 논문은 Business Scholarship Podcast(2021.6.22.자)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저자는 USC로스쿨에서 계약법과 회사법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이 논문에서는 가족기업에서의 경영권승계 문제를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속하는 “리어왕”에 대비하여 논의한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는데 논문에서는 저자의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적 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저자는 리어왕의 실패가 권력을 너무 빨리 승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승계작업이 너무 늦게 즉흥적으로 진행된 것을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승계작업을 가급적 뒤로 미루는 현상은 결국 기업총수가 언젠가 경영권을 물려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논문은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논문의 구성은 비교적 단순하다. I장에서는 리어왕의 실패를 토대로 경영권승계가 지닌 위험을 제시한다. 리어왕이야기를 전형으로 하여 미국에서의 대표적인 승계실패사례인 CBS/Viacom의 Sumner Redstone, 정유재벌인 Jack Grynberg, Ringling가족의 사례를 분석한다.
II장에서는 먼저 리어왕의 실패에 대한 통념적인 설명과 그 설명이 지닌 문제점을 제시한다. 이어서 저자는 승계작업의 원만한 진행을 막는 세 가지 요인을 차례로 언급한다. 첫째는 총수가 자신과 기업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생전에 기업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는 자신이 기업의 총수인 동시에 아버지라는 지위를 겸유하고 있는데 그 두 가지 역할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승계가 원만히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후손들과의 소통과 같은 절차가 필요한데 경영권승계는 그런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III장에서는 승계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 방안은 크게 ➀입법적인 해결책, ➁법원의 간섭, 그리고 ➂사적자치의 세 가지로 나뉜다. ➀과 관련해서는 가족기업에 적합한 새로운 회사형태(가칭 F Corporation)를 법으로 도입할 것과 아울러 사전의 승계작업을 촉진하기 위하여 저리의 융자, 과세특례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법에서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새로 도입되는 가족회사에서는 승계문제를 결정할 독립된 위원회를 이사회에 설치하고 이사와 고위경영자의 정년을 규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➁와 관련해서는 지배주주 있는 회사에서도 사외이사에 대해서 신인의무를 엄격하게 적용하여 이들이 승계작업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유도할 것과 총수의 고령에 따른 행위능력 저하에 대한 법적 대처를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➂과 관련해서는 주로 가족기업과 계속적으로 거래하는 제3자쪽에서 가족기업에 대해서 승계에 관한 사전 준비를 하도록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 세 가지 방안이 과연 현실적으로 앞서 설명한 승계의 위험을 얼마나 방지하고 원만한 승계작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