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간혹 법원판결이 거래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Citibank의 착오에 따른 9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이체의 유효성을 인정한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이 주목을 끌고 있다. 오늘은 이 판결을 계기로 금융거래에서의 계약과 법원의 역할에 대해서 조망한 간략한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Elisabeth de Fontenay, The $900 Million Mistake: In re Citibank August 11, 2020 Wire Transfers (S.D.N.Y. Feb. 16, 2021). 저자는 이미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 소개한 Duke로스쿨 교수로 이번 글은 1년 전에 올린 포스트(“불완전한 금융계약과 법원의 해석”(2020.7.13.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최근 Business Scholarship Podcast(2021.7.15.)에 Columbia의 Eric Talley교수와 함께 나와 이 판결에 대한 의견을 발표한 바 있다.
판결의 논점은 비교적 간단하다. Revlon판결로도 유명한 Revlon이 재정곤란으로 인하여 채무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디케이트대출과 관련하여 administrative agent를 맡았던 Citibank의 담당직원이 착오로 채권자들에게 9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송금하였다. 뒤늦게 착오를 발견한 Citibank측에서는 채권자들에게 잘못 송금된 사실을 알리고 자금의 반환을 요청하였으나 일부 채권자들이 반환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채권자들을 상대로 자금반환을 청구하였다. 뉴욕남부지구연방지방법원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Citibank의 부당이득반환청구를 기각하였다.
통상 착오로 지급된 자금에 대해서는 수령인이 그 자금을 반환해야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외적으로 수령인이 “유상의 변제”(discharge for value)에 해당함을 증명하는 경우에는 반환을 거부할 수 있다. 이 법리는 뉴욕주 대법원이 1991년 Banque Worms v. BankAmerica Int’l, 77 N.Y.2d 362 (1991)판결에서 천명한 바 있는데 (Podcast인터뷰에서) Talley교수는 연방지방법원은 유상변제의 항변에 대한 증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Citibank의 반환청구를 기각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저자인 Fontenay교수는 판결의 구체적인 논리보다 판결의 결과가 거래당사자들의 기대와 배치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법원의 판결이 거래계의 기대와 배치되는 것은 이 판결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상당히 폭넓은 현상이라는 점을 이미 1년 전 포스트에서 소개한 논문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저자는 판사가 결론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실무변호사들이라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을 요소들, 즉 Black의 법률용어사전, 1930년 이래의 보통법에 관한 Restatement, 19세기 초의 판례는 원용하면서 분쟁의 올바른 해결방안에 대한 시장의 기대나 정책적인 분석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뉴욕주 계약법이 당사자들의 기대와 어긋나게 해석되는 현상이 지속되는 경우 거래당사자들은 보다 상세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Citibank판결 이후 이미 그런 착오지급의 경우 자금반환의무를 정한 조항들이 포함된 계약서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어차피 완전한 계약서란 것은 존재할 수 없고 또 계약서가 길어질수록 거래비용도 높아진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을 사적자치에만 의존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이 논문과 Podcast에서 저자는 1990년 이후 자금대출시장의 환경이 크게 변하였고 그런 변화가 채무자나 채권자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내 흥미를 더 끄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인데 유감스럽게도 이에 관해서는 살짝 언급하는데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