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시절 취직을 위한 논문으로 “회사의 정치헌금”에 대해서 발표한 일이 있다(회사법연구II 325면 이하). 당시 로스쿨에서 나를 여러 모로 아껴주었던 故Kummert교수는 그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막연한 토픽을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 회의를 표시했던 기억이 있다. 2010년 Citizens United판결이 나온 후 그 주제는 미국에서 그야말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관련 논문도 쏟아져 나왔고 그 판결을 비판한 Macey와 Strine의 논문은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도 있다(2020.4.3.자 포스트). 오늘은 그 문제를 보다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Elizabeth Pollman, Corporate Personhood and Limited Sovereignty, Forthcoming Vanderbilt Law Review (2021). 저자는 이미 이 블로그에 수차 등장한 바 있는 저명 교수이다.
저자는 법인격이 인정된 회사에 대해서 헌법상 어떠한 권리까지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대법원 판례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검토하였다. 저자의 견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회사의 법인격은 이미 미국 건국 전부터 정착된 것이었지만 그것과 회사가 헌법상 어떠한 권리를 갖거나 가져야하는지의 문제와는 무관했다. 미국 대법원은 회사가 개인이 누리는 헌법상의 모든 권리를 동등하게 누린다고 결정한 적은 없다. 19세기와 20세기초에 걸쳐서 형성된 대법원판례에 따르면 회사가 향유하는 헌법상의 권리와 관련하여 부당한 압수수색을 받지 않을 권리는 인정받았지만 자기부죄금지특권이나 프라이버시권 같은 일부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였다. 초창기의 회사가 정부의 일부 기능을 수행하는 공적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회사는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인정받고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구성원인 시민과는 달리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정부가 간섭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했다. 19세기 회사의 헌법상 권리에 관한 대법원의 태도는 회사가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한편으로 회사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들 헌법상 회사가 향유하는 권리와 그렇지 않는 권리를 구분하는 일관성 있는 논리는 개발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전통적으로 회사가 “시민의 단체”(associations of citizens)라는 사고에서 출발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이미 일부 회사의 경우에는 19세기 후반부터 그런 사고에 부합하지 않았다. 저자는 Citizen United판결을 비롯하여 회사에게 개인과 마찬가지의 헌법상 권리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들은 결국 회사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약화시켰다고 비판한다. 이 논문은 현대 사회에서 일부 대기업이 갖는 과도한 영향력을 적절하게 통제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지난 포스트(2021.7.23.자)에서 소개한 Tim Wu나 Lina Khan교수의 견해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