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Ramseyer교수의 위안부관련 논문이 우리 여론에서도 널리 화제가 되었다. 워낙 고통스러운 주제이기도 하고 그가 30년 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기도 해서 논의자체를 꺼려왔다. 이번 일로 법학계를 넘어서도 악명이 높아졌지만 그는 대표적인 일본법 연구자인 동시에 몇 권의 책까지 집필한 회사법학자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제까지 그가 발표한 법경제학연구업적을 전반적으로 평가한 최신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Craig Freedman & Luke Nottage, Revisiting Ramseyer: The Chicago School of Law and Economics Comes to Japan (2021). 저자는 모두 호주학자들로 Freedman은 경제학자이고 Nottage는 일본법 전문가이다.
구태여 이 논문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논문이 단순히 Ramseyer교수의 연구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일반적인 시카고식 법경제학 연구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고 그것이 우리 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의 60페이지에 달하는 지면의 1/3가량을 시카고식 법경제학연구에 대한 소개와 비판에 바치고 있는데 그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논문은 도처에서 Freedman이 1997년 시카고에서 행한 여러 저명학자들과의 인터뷰를 자세히 인용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서로에 대한 사적이고 꾸밈없는 평가들이 담겨있다. 특히 그곳에 인용된 George Stigler에 대한 일화들은 한편으론 재미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경외심을 훼손시키는 바람에 씁쓸하기도 했다.
시카고학파의 특징은 시장이 옳다는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그와 다른 통념을 비판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Ramseyer의 연구가 그 전형적인 예라고 평가한다. 논문은 그가 분석한 무수한 연구대상 중에서 3가지 분야, 즉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제조물안전과 소비자법, 관료와 법관에 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Ramseyer는 법만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댔지만 그의 주장은 시종일관 기본적으로 일본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 특히 서구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일본에 대한 이제까지 학계의 통념, 즉 계열관계의 존재, 주거래은행의 주도적 역할, 관료의 우위, 종업원이익의 존중, 사외이사의 필요성 등을 모두 부정한다. 그 점에서 그는 우상파괴자의 역할을 자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그의 연구는 한결같이 모든 사회현상은 시장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에 서서 미리 정해진 결론에 부합하는 데이터만을 동원하여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이 점에서 위안부논문은 기존의 연구와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법경제학 일반에 대해서 서술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경제학은 정책결정과 법학의 어느 분야에도 가치있는 분석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조사수단에 불과하다. 경제학적 분석이 법이나 규제의 문제에 선험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 그것은 역효과적이 될 수 있다. 그런 경우에 경제학의 사용은 이념적인 논쟁을 이기기 위한 또 하나의 수사적 전략으로 타락한다. . . . [경제학적 분석이 남용된다고 해서] 법학자들이 경제학을 법률문제를 분석하는 유용한 수단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면 잘못이다.”
법경제학연구는 이제 미국에서는 주류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자리 잡았고 그 영향력은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과거 일부 열성적인 신봉자들이 쓴 글을 읽다보면 그들의 단순명료한 논리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그 강력한 논리의 현실적합성에 대해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40년 전 밀튼 프리드만의 “Free to Choose”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시장이 완전하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에 그토록 사로잡혀 상식을 부정할 수가 있는지 의아했다. 이 논문은 비단 Ramseyer의 연구에 대한 비판에 국한하지 않고 널리 학문연구에서 일원론적 관점의 위험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