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산법은 우리 도산법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이른바 equitable subordination(형평법적 종속 내지 후순위화)법리는 우리 법에는 수용되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법리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혹 나오곤 한다. 오늘은 이 법리에 관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Steven L. Schwarcz, The Inequities of Equitable Subordination (2021). 저자는 이미 이 블로그에서 수차 소개한 바 있는 금융법분야의 권위자이다.
이 법리는 주로 지배주주가 회사에 대해서 갖는 채권을 다른 채권의 후순위로 처리하는 내용의 도산법상 법리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나 다른 채권자가 갖는 채권에 대해서도 후순위화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동원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 이 법리는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의 착취로부터 자회사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는데 법원이 그 적용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때로는 모회사(내지 다른 채권자)의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채권의 후순위화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법리를 채권자의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논문의 본문은 크게 6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이 법리가 형평법상 법리로 출현한 과정을, 이어서 II장에서는 그것이 도산법으로 법제화된 과정을 각각 살펴본다. 저자는 도산법전이 단순히 “형법법적 종속원칙”(principles of subordination)에 따라 법원이 후순위처리를 할 수 있음을 규정할 뿐 그 적용기준에 대해서는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은 점을 강조한다. III장은 법원이 이 법리를 무과실책임의 경우에도 확장적용하게 된 변화에 대해서 논한다. 논문에 따르면 처음에는 그 법리가 제한적으로 적용되었지만 나중에는 “채권자의 부당한 행동”이 필요없다고 하거나 채권자의 귀책사유를 넓게 해석하는 식으로 확대적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곳에 제시된 사례는 주로 정부의 조세채권이나 은행채권자와 같이 회사내부자가 아닌 채권자가 관여된 경우이다. 흥미로운 것은 회사에 대한 주식매각으로 생겨난 주주의 채권도 후순위처리를 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형평법적 종속법리의 적용범위가 확장되는 것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적 견해를 검토하고 그 법리를 다른 무과실책임법리와 비교한다. IV장에서는 이 법리를 무과실책임의 사례에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기업거래 당사자들의 기대와 충돌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V장에서는 그것이 결국 신용의 비용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상의 서술을 토대로 VI장은 이 법리의 재구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 법리를 선의의 채권자들의 기대를 보호하면서도 모회사(내지 다른 채권자)가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적용하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주장한다. 문제는 귀책사유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 법원은 다음 세 가지 경우를 포함한다고 하고 있다. ➀사기, 위법, 신인의무 위반; ➁과도하게 적은 채무자의 자본(undercapitalization); ➂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채무자를 수단으로 통제하거나 이용하는 행위. 저자는 이런 기준의 문제점(특히 적은 자본의 경우)을 지적한 후에 법원이 귀책사유를 일일이 판단하지 말고 일종의 경영판단원칙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즉 채무자의 내부자가 아닌 채권자(non-insider creditor)가 내린 경영판단은 부당한 행동으로 보지 말자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도산법상의 이 법리와 유사한 기능을 발휘하며 혼선을 빚고 있는 recharacterization과 equitable disallowance 같은 다른 법리들은 폐기할 것을 제안한다.
참고로 Robert C. Clark, Corporate Law (1986)(52-71면)에서는 이 법리를 특히 사기적양도(fraudulent transfer)법리와 비교하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35년이 지난 현재도 아직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