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신뢰성 있는 제도

오늘은 거창한 시각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제도(institutions)와 관련하여 비판적으로 조망한 짤막한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Anat R. Admati, Capitalism, Laws, and the Need for Trustworthy Institutions (2021). 저자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로 있는 이스라엘 출신의 경제학자이다.

저자는 자유시장 자본주의(free-market capitalism)가 다수의 민주적 제도를 훼손함으로써 제도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아울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였다고 비판하며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신뢰성을 높여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12페이지에 불과하지만 본문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먼저 2장은 “말과 현실”이란 제목 하에 자본주의의 이론과 현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보통 자본주의는 정부가 아닌 사적주체가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경제와 정치시스템이라고 보고 있지만 저자는 경제활동이 정부와 법제도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법제도의 역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서 법제도가 중요하다면 그것을 형성하는 정치과정과 법제도가 작동하는 방식도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교정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데 저자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는 그렇지 못한 상태이다. 저자는 민주주의 실패의 원인으로 회사의 과도한 영향력을 들고 있다.

3장에서는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주체인 회사에 대해서 살펴본다. 회사는 정부가 시민을 보호하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회사의 영향력을 통제하기는 어렵다.

4장에서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금융화된(financialized)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그것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가버넌스 이슈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주장한다. 현대회사에서 경영자의 인센티브는 주주가치에 맞춰져 있는데 금융지표를 추구하는 경영자의 행태는 사회적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부채의존형 경영을 든다. 부채비율이 높을수록 주주(그리고 경영자)의 기대수익이 올라갈 수 있고 세무상으로도 유리하기 때문에 경영자는 고위험의 차입위주경영에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2007년에 시작된 금융위기였지만 그 후에도 근본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운용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5장에서 저자는 거짓 정보와 기망에서 찾고 있다. 저자는 금융화된 자본주의 하에서 거짓 정보와 기망이 금융기관을 비롯한 회사의 권한남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른바 정책 아이디어의 시장도 올바른 결과를 도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회계규범에 대한 금융기관의 영향력, 회계감사인의 기능부전, 규제자들의 포획 등 그런 상황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언급한다.

결론에서 저자는 현재의 자본주의는 경제와 정치의 시스템 전반에서 가버넌스를 훼손한다고 판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 법과 제도의 신뢰성을 높일 것을 주장한다.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무엇보다 투명성(transparency)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공시개선, 내부고발촉진, 감사의 신뢰성 제고, 피해방지조치에 반복적으로 실패한 최고책임자에 대한 제재강화 등을 든다. 그밖에도 중립적인 정책전문가, 독립적인 미디어, (시장, 회사, 정치, 법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교육, 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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