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의 “감춰진 의제”

회사에 실질적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명목상의 주주에 의한 의결권행사, 즉 empty voting의 문제는 이미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늘은 어떤 의미로는 그와 반대의 효과를 갖는 이슈를 다룬 최근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Scott Hirst & Adriana Robertson, Hidden Agendas in Shareholder Voting (working paper, 2021) 저자들은 각각 Boston대학과 Toronto대학 교수로 있는 소장학자이다.

논문의 대상은 저자들이 “감춰진 의제”(hidden agendas)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주총의 의제가 기준일까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주식대차업무를 하는 기관투자자들로서는 의제를 모르는 상태에서 의결권을 포기하거나(주식의 대여)나 의결권을 회복하는(주식의 회수) 결정을 하게 된다. 이 문제는 주식대차와 공매도가 활발한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문제는 실질주주가 의결권행사를 포기하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명목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empty voting의 반대편에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의사결정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정도의 면에서는 empty voting보다 훨씬 중요성이 떨어지는 문제라고 할 것이다.

논문은 논리적인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➀먼저 “감춰진 의제”란 현상이 왜 발생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I장). ➁그 현상이 실제로 얼마나 광범하게 존재하는지를 밝힌다(II장). 논문에 의하면 88%의 주총에서 그 현상이 발견된다고 한다. ➂그 현상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검토한다(III장). 저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기준일의 1~2주 전에 대여 주식 수가 크게 감소하고 기준일 직후 바로 증가하는 점에 비추어 주식을 대여하는 자들은 의결권을 중시한다고 추정한다. ➃저자들은 이 현상이 기관투자자의 의결권행사를 중시하는 SEC의 현재 태도와 모순된다고 지적하며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IV장). 저자들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해법은 SEC가 기준일 5일 전까지 위임장서류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➄이 현상과 관련된 몇 가지 이슈들을 살펴본다(V장). 저자들에 따르면 이 현상은 달리 “감춰진 효용”을 지니고 있지 않다. 저자들은 이 현상이 시정된다고 해서 반드시 회사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주식보유자가 의제를 미리 알고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주식을 대여하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대여한 주식을 회수하는 것은 그 자체로 효율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저자들은 이 현상의 시정을 위해서 주주에 대한 통지를 앞당기기보다 위임장서류를 미리 제출하도록 제안한 것은 미리 주주를 확정하여 통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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