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과 親회사적 판례의 역설

미국에서 회사법은 주법이 관장하는 분야이다. 그 결과 주로 헌법문제를 다루는 연방대법원에서 회사의 내부사항(internal affairs)에 관한 분쟁을 처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회사의 외부적 활동과 관련된 분쟁에 관해서는 종종 판결이 내려지기도 한다. 때로는 2010년의 Citizens United판결과 같이 법조계 뿐 아니라 일반여론의 관심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오늘은 이들 소수의 회사관련 연방대법원판결들과 회사법과의 관계에 관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Elizabeth Pollman, The Supreme Court and the Pro-Business Paradox, 135 Harvard Law Review 220 (2021). 저자는 이제 더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펜실베니아대학 로스쿨 교수이다.

저자의 주장은 연방대법원의 최근의 회사관련판결들은 주로 회사의 권한을 확대하는 한편 회사의 책임을 제한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親회사적 판결들은 거꾸로 회사의 구성원인 일반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것이다.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Roberts대법원장 취임 후의 연방대법원이 친회사적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세 건의 판결을 소개한다. 이들 판결은 ➀회사의 권한을 확대하는 판결과 ➁회사의 책임을 제한하는 판결로 나눌 수 있다. ➀은 헌법상의 조항을 근거로 회사의 운신의 폭을 넓히는 판결로 비영리단체의 후원자정보를 보고할 것을 요하는 주법을 위헌으로 선언한 Americans for Prosperity Foundation판결이다. 회사가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는 관점에 기초하여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회사의 정치적 비용지출을 뒷받침한 Citizens United판결과 궤를 같이 하는 판결로 볼 수 있다. ➁와 관련해서는 두 건의 판결을 검토한다. 첫 번째의 Ford판결은 몬타나주와 미네소타주에서 일어난 자동차사고로 다친 원고들이 Ford사에 제조물책임을 물은 사안에서 몬타나주와 미네소타주 법원은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는 Ford의 주장을 배척한 판결이다. 두 번째의 Nestlé판결에서 대법원은 가나 등지에서의 아동노동을 이용한 코코아생산이 국제법위반의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그 코코아를 수입한 Nestlé사를 상대로 그런 국제법위반행위의 방조자로서 외국인불법행위조항(Alien Torts Statute)에 따른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Nestlé의 문제된 활동은 모두 국외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이유로 그 조항의 적용을 부정하는 Nestlé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회사법학자의 관점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이들 판결이 회사법적 측면에서 제기하는 문제점을 서술한 II장이다. II장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➀회사의 권한을 확대하는 판결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회사권한이 확대될수록 그 권한을 통제하고 권한행사에 관한 공시를 강화하라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먼저 회사의 정치적 지출에 관한 논의를 설명한 후 새롭게 등장한 논의로 ESG에 관한 공시에 대해서 언급한다. 특히 ESG공시가 의무화되는 경우 그것이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위반으로 판단될 위험에 관한 논의를 소개한다. 저자는 회사가 사람들이 모인 단체라는 관점에 기초하여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조항으로 회사의 정치적 비용지출을 정당화한 연방대법원의 논리가 회사구성원이 회사의 정치적 내지 사회적 활동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모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➁저자는 회사의 활동이 국외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이유로 외국인불법행위조항의 적용을 배제한 Nestlé판결의 논리가 회사의사결정에서 이사회가 차지하는 위상에 비추어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즉 회사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이사회의 역할이란 점에서 실제 코코아 생산이 국외에서 수행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Nestlé이사회의 결정과 감독을 경시한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➂저자는 회사권한을 확대하는 동시에 회사책임을 제한하는 연방대법원의 최근 경향은 회사법원칙과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회사법은 주로 주주와 경영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이해관계자나 사회에 대한 영향에 관해서는 주로 다른 법률로 규율함으로써 회사지배의 내부영역과 외부영역은 구분하는 것이 전통적인 법규제의 원칙이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이 회사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회사의 책임을 제한하는 태도를 취함에 따라 이제 회사의 내부영역에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배제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그리하여 회사가 내부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반영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 힘을 얻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ESG의 대두를 들고 있다.

➃끝으로 저자는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親회사적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 그로부터 이익을 보는 것은 개인대주주나 경영자이고 일반 소액주주들에게는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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