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격부인법리의 逆적용

내년 2월 발간을 목표로 진행 중인 회사법책의 개정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어 어제는 공저자인 노혁준, 천경훈 두 교수와 Zoom미팅을 가졌다. 이번 개정에는 금년에 나온 대법원판결을 다수 반영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법인격부인법리의 逆적용을 긍정한 판결이다(대법원 2021. 4. 15, 2019다293449 판결). 5판에 포함된 2004년의 서울고등법원판결을 그것으로 교체하면서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법원은 “회사가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이용되고 있는 예외적인 경우까지 회사와 개인이 별개의 인격체임을 이유로 개인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회사의 법인격을 부인하여 그 배후에 있는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하여 개인에 대한 법인격부인법리의 적용을 확인한 것에 이어서 “나아가 그 개인과 회사의 주주들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등 개인이 새로 설립한 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적 지위에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서, 회사 설립과 관련된 개인의 자산 변동 내역, 특히 개인의 자산이 설립된 회사에 이전되었다면 그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개인의 자산이 회사에 유용되었는지 여부와 그 정도 및 제3자에 대한 회사의 채무 부담 여부와 그 부담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 회사와 개인이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 설립 전 개인의 채무 부담행위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부인하는 것이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한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회사 설립 전에 개인이 부담한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여 그 법리의 회사에 대한 逆적용도 정면으로 인정하였다. 사안은 개인인 채무자가 개인사업체를 토대로 회사로 설립하면서 개인사업체의 장부상 채무를 포괄적으로 인수하면서도 문제의 채무는 인수하지 않은 채무면탈의 전형적 경우로 채무자가 그 주식의 50%를 보유하고 나머지 주식은 형과 아버지가 보유하며 함께 이사직을 맡아온 경우였다.

우연히도 며칠 전 Bainbridge교수의 블로그에서 법인격부인법리의 逆적용에 관한 캘리포니아주판결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델라웨어주판결에 관해서는 이 블로그 2021.5.31.자 포스트 참조). 그는 역적용의 경우를 역적용을 구하는 자가 주주인 이른바 내부자 역적용(insider reverse veil piercing)과 채권자가 역적용을 구하는 외부자 역적용(outsider reverse veil piercing)으로 구분한다. 이번 판결의 사안도 외부자 역적용에 속하지만 미국에서도 주로 그 유형이 논의의 대상이다. 캘리포니아주 판례도 외부자 역적용을 인정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법리자체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Bainbridge교수는 물론이고 법원도 회의적이란 것이다. 외부자 역적용에 대해서는 일반 법인격부인의 경우에 비하여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데 잘못 없는(innocent) 주주나 채권자의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Postal Instant Press, Inc. v. Kaswa Corp판결(162 Cal.App.4th 1510 (2008))에서 법원은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역적용을 부정하는 우리 학설의 주장과 같이) 채무자의 보유주식을 압류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임을 시사했다. Bainbridge교수는 바로 며칠 전 나온 판결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안은 캔사스주법원에서 승소판결을 얻은 채권자가 캘리포니아주법원에서 집행판결을 구하면서 채무자에 추가로 두 개의 유한책임회사를 추가한 경우로 당시 이혼청구중인 채무자의 처가 그 회사들의 5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1심법원은 회사의 추가를 승인하였지만 항소심은 처가 역적용으로 피해를 보는 잘못 없는 구성원에 해당할 수도 있으므로 공동소유에 관해서 더 검토해볼 것을 명하며 1심의 결정을 파기환송하였다.

대법원판결에서는 나머지 절반의 주식을 소유하는 주주이자 이사인 형과 아버지를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한다는 이유로 역적용을 긍정하였으나 캘리포니아주법원은 이혼청구 중이기는 하지만 부인의 경우에도 경제적 이해관계를 달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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