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N의 운영방향에 관한 생각

퇴직 후 블로그 문을 연지도 어언 2년이 되어간다. 이번 포스트가 내가 올린 것으로는 정확히 4백 번째에 해당한다. 그 4백 개 중에는 신간이나 보고서 발간의 소식처럼 품이 들지 않은 것도 있지만 해외의 최신 연구성과나 실무동향을 나름대로 정리한 글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주로 기업법 연구자들을 염두에 두고 출범한 고품격(!) 블로그이니 방문자 수에 대해서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래도 월간 활성 사용자가 4백 명에 육박하고 1일 사용자가 20명 선을 오르내리는 규모로 성장했으니 연구자와의 접촉도는 퇴직 전보다 오히려 높아진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수준에 마냥 으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지난 포스트를 들추다보면 제대로 다듬지 못한 어색한 표현이나 매끄럽지 못한 글의 흐름이 눈에 밟히곤 한다. 때론 너무 축약하다보니 대상논문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거나 중요한 부분이 빠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모두 내 능력과 정성이 부족한 탓이니 그저 독자들의 양해를 구할 뿐이다. 평소 완벽주의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떠올리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으면 된다”거나 “소절(小節)에 너무 억매이면 먼 길을 갈 수 없다”는 자기위주의 척도이자 지침이다. 게으른 실용주의자에게 안성맞춤인 이런 소신을 방패삼아 블로그의 온갖 허물을 짐짓 외면하고 있는 중이다. 마침내 없는 것보다 못한 딱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슬그머니 문을 닫아야겠지만 아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호의 가득한 지인들의 말을 믿고 싶다.

초기부터 방문한 분이라면 아직 젖먹이나 다름없는 이 블로그도 그간 상당한 변화를 겪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치밀한 사전준비 따위는 없이 그냥 개시한 일이니 다소의 우왕좌왕은 없는 편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기업과 법에 관한 모든 분야에 관한 모든 종류의 정보를 대상으로 삼았다. 1일 1건을 올린다는 당초의 목표를 채우고 또 독자의 범위를 넓힌다는 차원에서는 그런 무모한 포부도 일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블로그의 성격은 점점 회사법과 자본시장법 분야의 새로운 논문을 소개하는 쪽으로 굳어졌다. 이는 블로그 자체가 KBLN이란 자못 거창한 명칭이 무색하게 사실상 내 개인 블로그와 진배없는 처지로 전락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방문자분들께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이 부분은 앞으로 크게 개선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내 형편으로는 非미국법 논문을 좀 더 발굴하여 블로그의 미국편중경향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 것 만해도 버거운 일이다. 사실 요즘에는 블로그의 범위확장에 대한 애착마저도 다 부질없는 욕심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차피 소일 삼아 시작한 일이니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것이 노년의 지혜가 아닐까?

이런 상념이 무르익을 무렵 ECGI에서 내년부터 기업지배구조와 스튜어드십에 관한 블로그를 시작하는데 자문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며칠 전 ZOOM으로 첫 자문위원회를 했는데 법학자들만 해도 Bebchuk, Hopt, Davies, Roe, 神田 등 참여자의 면면이 화려했다. (참고로 내가 초청을 받은 것은 내가 이들과 같은 반열에 들 만한 대가라서가 아니라 편집대표를 맡은 Puchniak교수가 마침 나와 각별한 사이란 점이 작용한 탓으로 짐작된다.) 회의에서는 블로그의 운영방향 전반에 걸쳐 논의하였는데 하바드와 옥스퍼드 블로그의 중간을 지향하자는 견해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미국일변도의 하바드 블로그보다는 다른 나라의 동향에도 더 배려하고 학자중심의 옥스퍼드 블로그보다는 실무계의 참여를 더 유도하자는 일종의 절충론인 셈이다. 그밖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KBLN을 운영하는 내 관심을 끈 것은 포스트 업로드의 빈도를 어느 정도로 유지할 것인지의 문제였다. 뜻밖에도 요즘은 모두들 정보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으니 양보다 질을 추구하자는 주장에 여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래도 1주에 3번 정도는 새로운 글이 실려야 새 블로그가 주목을 받지 않겠냐고 반론을 펴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무도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속으로 “나는 혼자서도 주3회 업로드를 해오고 있는데”란 볼멘소리를 참고 있던 중 불현듯 그 동안의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종종 마땅한 글감을 찾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던 터라 “양보다 질”이란 구호가 솔깃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 회의를 마친 후 핑계 김에 작년 8월부터 고수해오던 주3회(월ㆍ수ㆍ금) 업로드 방침을 주2회 정도로 줄여보기로 마음먹었다. 주3회가 주2회로 줄어든다고 해서 내 글이 갑자기 심오해지거나 유려해질 까닭은 없다. 다만 위드 코로나가 진행되는 시점에 그간 미뤄왔던 여행 등 개인적 여가활동의 활성화로 내 남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블로그의 이런 변화에 기존 독자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실망”까지 바라는 것은 과욕이겠지만 “무덤덤”이나 심지어 “환영”의 태도를 보인다면? 글쎄, 맥이 좀 빠질 것 같기는 하다.

기나긴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를 맞아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건승을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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