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법의 여러 분야 중 사채에 관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많지 않다.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7년 윤영신 교수의 박사학위논문(사채권자보호에 관한 연구(서울대 대학원))이 발표된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윤교수는 사채에 관한 일련의 연구를 발표하였고 2010년대에는 박준 교수를 비롯한 여러 교수들의 연구가 속속 출판되었으나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채에 관한 박사학위논문이 다시 나오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김성은 변호사가 박준 교수의 지도를 받아 제출한 논문의 제목은 “사재권자의 권리행사와 권리변경에 관한 연구”로 국내 사채법연구가 그간 한층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오늘은 그 논문에서 다뤄진 테마 중에서 사채권자집회결의를 통한 사채원리금의 감면이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사채권자집회에서 사채원리금의 감축을 결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이에 관해서는 긍정설과 부정설이 갈려 있는데 김변호사는 내가 노혁준, 천경훈 교수와 공저한 교과서에 그 문제에 관한 언급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교과서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이 문제가 간단히 결론을 내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과거 일본 회사법은 문언상 긍정설을 취하기 어려운 구조를 취하였음에도 긍정설이 존재했다. 우리 상법은 문언상 일본 회사법보다는 긍정설을 취하기 수월한 구조를 취하고 있음에도 김변호사는 부정설을 지지한다. 긍정설은 결국 실무상의 필요성을 중시한 것인데 실제로 사채권자집회의 결의를 통해서 원리금 감축을 시도한 사례는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없었다고 한다.
이 문제는 결국 일부 사채권자의 “버티기”(holdout)의 문제와 다수의 횡포의 문제 중 어느 쪽을 더 중시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소수의 “버티기”를 더 문제 삼는 차원에서 사채권자집회의 결의에 의한 사채원리금 감축을 허용하는 쪽을 지지하는 견해가 우세한 것 같다. 일본에서는 마침내 2019년 해석상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것이 허용됨을 명시하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쪽으로 회사법을 개정하였다(706조1항1호). 소수의 버티기와 다수의 횡포사이의 줄다리기는 비단 우리나라나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발표된 논문(Francesca Prenestini, The Importance of Being Bound: Bondholders’ Vote and Workouts in the U.S. and in Italy, 95 American Bankruptcy Law Journal 313 (2021))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태도를 보이는 입법례들을 소개한 후 긍정설의 타당성을 주장하고 이어서 부정설에 기초한 미국과 이태리의 입법례를 검토한다.
이처럼 현재는 다수의 횡포보다는 소수의 버티기를 우려하는 견해가 우세한 것 같지만 이에 대해서는 비판도 없지 않다. 도산절차 안팎에서 소수의 버티기에 대해서 과도한 고려를 베푸는 것에 대해서 비판한 최근 논문으로 Stephen J. Lubben, Holdout Panic, 96 American Bankruptcy Law Journal (forthcoming 2022). 그밖에 사채권자의 권리변경에 관해서는 코베대학 유키오카(行岡睦彦)교수의 다음 책도 있다. “社債のリストラクチャリング――財務危機における社債権者の意思決定に係る法的規律”(有斐閣、2018년). 유키오카 교수는 서울대와 동경대 상법교수들이 동경과 서울을 오가며 개최하는 정기세미나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에는 조교신분이었다. 이 책은 자신의 조교논문을 출간한 것으로 미국, 독일, 스위스의 법제를 비교검토하여 분석한 것이다. 2018년 이 책으로 상사법무연구회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