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배상책임보험에서 실무상 중요한 것은 면책사유이다. 면책사유 중에서도 특히 까다로운 것은 이른바 부정직행위(dishonest act: 불성실행위로 번역되기도 한다)이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영문약관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그 의미가 모호하여 해석을 둘러싼 다툼이 많다. 일본에서는 대신 “법령위반을 인식하면서 행한 행위에 기인한 배상청구(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되는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 포함)”란 표현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山下友信편, 逐條 D&O保險約款(2005)).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일본에서와 같은 문구가 사용된 적도 있지만(김건식/최문희, 이사의 배상책임보험, 김건식, 기업지배구조와 법(2010) 259면) 언제부터인지 다시 부정직행위란 용어가 다시 일반화되고 있는 것 같다(노미리,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관한 판례동향, 상사판례연구 30.1권(2017) 224면). 오늘은 일본의 면책사유인 법령위반의 의미에 관한 최근 판례를 소개한다. 東京高裁 令2・12・17判決 令2ネ第二三〇九号(상사법무 2284호(2022.1.25.) 59-60면.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A는 상장회사 P사의 대표이사이고 B와 C는 각각 경리담당이사와 직원이다. B와 C는 과거 P의 자회사였고 자금난을 겪고 있던 S사의 요청에 따라 이사회규칙상 요구되는 이사회승인을 거치지 않고 무단대출 내지 무단보증을 감행했다. 이들 무단대출과 무단보증은 후일 발각되었으나 이사회는 이에 대한 사후승인을 하고 넘어갔다. 그 후에도 C는 이사회결의 없이 회사자금을 송금하는 등 S사를 위한 금융지원을 계속했다. P사와 P사 주주인 참가인은 B와 C의 부정한 금융지원이 A등의 감시의무위반 등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A등을 상대로 임무해태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선행소송). 법원은 P사의 청구를 인용하며 금융지원액 뿐 아니라 부정한 금융지원에 관해서 회사가 설치한 특별조사위원회와 책임추급위원회의 보수까지 회사의 손해로 인정하였다. A가 선행소송에서 인정된 배상책임의 보상을 구하기 위하여 보험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것이 본건소송이다.
본건 소송의 주된 쟁점은 두 가지이다. ①D&O보험의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인 이사의 법령위반에 선관주의의무위반이 포함되는지 여부; ②본건에서 A가 법령위반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 법원은 양자를 모두 긍정하였다.
①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회사법 330조에 의하여 주식회사와 임원과의 관계는 위임에 관한 규정에 따르게 되어 민법 644조는 위임에 관한 수임자의 주의의무로서 수임자는 위임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할 의무(이른바 선관주의의무)를 진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가 회사에 대해서 지는 선관주의의무는 법령상의 의무라고 풀이되고 본건 면책조항에서 말하는 ‘법령’으로부터 이를 제외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본건 면책조항에서 말하는 ‘법령에 위반하는 것’에는 이사로서의 선관주의의무에 위반하는 것도 포함된다. . . . 본건 면책조항은 법령에 위반하는 것을 피보험자가 인식하면서(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를 포함) 행한 행위에 기인하는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 보험자를 면책하는 것이고 피보험자의 선관주의의무위반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에 관하여 당연히 보험자를 면책한다고 할 것은 아니다.”
②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A는 본건 무단보증에 대해서 대표이사로서 선관주의의무에 기하여 그 경위를 조사하고 관계자의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음에도 S사의 이익확보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 후의 S사에 대한 우회융자[에] 대해서도 사실을 은폐하고 감사법인에 대해서도 스스로 허위의 설명을 하는 행위 등을 하였는바 A는 이러한 자신의 행위가 선관주의의무에 반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인정되고 나아가 이러한 행위 때문에 제3자위원회를 설치할 필요성이 한층 높아지고 S사에 대한 부정한 금융지원에 대해서 조사를 할 특별조사위원회 및 부정한 금융지원의 관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의 요부 등에 대해서 자문하기 위한 책임추급위원회를 설치하게 되었기 때문에 P사가 위의 각위원회에 관한 비용을 지출한 것은 A의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을 인식하면서 행한 행위에 기인하는 손해라고 인정된다.”
앞서 언급한 내 논문에서는 주의의무규정과 같은 이사의 의무에 관한 일반규정은 법령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261면). 일본의 학설은 반대의 입장을 취하였는데(逐條 D&O保險約款 84면) 본건 판결은 그것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