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상 회사의 남용과 본거지법설

회사의 속인법 결정에 관해서는 이른바 설립준거법설과 본거지법설이 대립한다. 우리 국제사법은 설립준거법설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우리나라에 “주된 사무소가 있거나” 우리나라에서 “주된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우리 법을 적용한다(§16)고 하여 사실상 국내회사가 국내법 적용을 회피할 여지를 봉쇄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실제 영업을 하는 장소와 무관하게 설립준거법설을 관철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법의 선택이 가능하고 그 결과 주회사법사이의 “경쟁”이 발생한다. 법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현대법학의 조류에 따르면 본거지법설은 조금 경직적인 것으로 보이는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은 최근 Oxford블로그에 발표된 본거지법설 옹호론을 소개한다. Horst Eidenmüller, Shell Shock: In Defence of the ‘Real Seat Theory’ in International Company Law (2022.3.25.). 저자는 지금은 Oxford에서 가르치고 있는 저명한 독일교수로 이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설립준거법설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당시 식민지에서 사업하는 영국회사에 영국법을 적용하는 수단으로 유용했다. 반면에 독일을 비롯한 대륙법계국가에서는 본거지법설을 따르고 있는데 2008년 연방대법원은 독일에 본거지를 둔 스위스주식회사를 독일에서 설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식회사가 아닌 조합으로 보고 구성원들의 무한책임을 인정하였다. 저자는 본거지법을 중시하는 사고는 다른 입법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예로 유럽의 도산규정(European Insolvency Regulation)을 들었다. 그에 따르면 국제도산에서 도산관할권은 채무자의 주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센터(center of the debtor’s main interests(COMI))가 소재하는 나라의 법원이 갖는데 COMI개념의 바탕에는 본거지법설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설립준거법설을 따르면 동일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들은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설립준거법을 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저자는 실제로 그처럼 동일한 설립준거법을 선택하는 기업집단은 매우 드물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설립준거법설의 남은 장점은 회사법의 경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인데 저자는 그러한 경쟁이 과연 주주들에게 유리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고 사회전체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포스트는 명목상 회사(shell corporations)를 이용한 조세회피, 자금세탁 등 위법행위를 막기 위하여 명목상 회사의 실질적 소유자를 확인하도록 하는 영미의 최근 입법과 관련하여 작성된 것이다. (일본에서도 금년 1월부터 “상업등기소에서의 실질적지배정보일람의 보관등에 관한 규칙”이 시행되고 있다(상사법무 2282호 14면이하)) 영미의 입법은 명목상 회사의 법인격을 전제한 것인데 본거지법설에 따르면 그 법인격이 부정되므로 결국 앞서 소개한 독일판례에서와 같이 명목상 회사의 배후에 있는 실제의 이해관계자들이 회사와 거래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저자는 본거지법설을 채택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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