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내부자의 신인의무는 미국 회사법상 핵심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현재 미국 회사법과 증권법상 신인의무의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Marc I. Steinberg, To Call a Donkey a Racehorse — The Fiduciary Duty Misnomer in Corporate and Securities Law, 48 Journal of Corporation Law Issue 1 (2022 Forthcoming) 저자는 회사법과 증권법분야의 연구업적이 많은 SMU로스쿨 교수로 이름을 안지는 오래되었지만 만난 적은 없다.
저자는 회사법이나 증권법상 회사내부자를 수인자(fiduciary)로 파악하여 엄격한 신인의무를 적용한다고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회사내부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 기준을 대폭 완화함으로써 그 명칭과 실질 간에 괴리를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논문의 본문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지만 핵심은 I장이다. I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A절에서는 조합과 유한책임회사의 경우에는 신인의무가 크게 완화되고 있고 정관으로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B절에서는 일반주식회사에서의 신인의무의 실태를 주의의무, 경영판단원칙, 성실의무(duty of good faith), 충성의무(duty of loyalty), 지배주주의 경우, 폐쇄회사의 경우로 나누어 이들 모든 영역에서 신인의무의 요구가 크게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의의무와 경영판단원칙과 관련하여 회사내부자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가 극히 제한된다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성실의무의 위반이 인정되는 경우는 ①회사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목적의 행동을 고의로 하거나, ②실정법위반의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거나, 또는 ③행동할 의무가 있음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신인의무의 준수를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경우라고 함으로써 고의적인 잘못으로 한정한다. 이처럼 신인의무의 명실이 괴리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법규준수에 관한 감시의무의 경우이다.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한편으로는 통상적인 운영상 적절한 정보가 적시에 제공되도록 시스템을 갖출 것을 이사회에 요구하면서도 실제 이사에 대해서 성실의 흠결을 근거로 감시의무위반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①당해이사가 보고나 통제시스템의 실행를 완전히 실패하거나(utterly failed) ②그런 시스템을 실행하였지만 그 작동의 감독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유념해야할 위험이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사실상 책임이 인정되는 범위를 크게 좁혔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충성의무의 후퇴와 관련해서는 관계자거래와 주주대표소송의 각하를 정당화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독립이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I장 C절에서는 증권법분야에 관해서 설명한다. 증권법분야에서는 신인의무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지만 저자는 공시서류의 부실기재에 대한 책임의 면책사유로서의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의 해석과 거래소법상 사기금지조항(10(b)조)의 해석과 관련하여 역시 비슷하게 신인의무의 후퇴현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III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전반적 평가하는 동시에 자신의 개선안을 제시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이사의 책임에 대해서 기준이 완화된 것은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비중이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저자의 견해이다. 유능한 사외이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책임을 질 가능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본 것이다. 저자는 말로는 엄격한 의무를 적용하는 것 같은 외관을 보이면서도 실제 책임을 물을 때는 매우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현재 상태보다는 회사내부자에 과실기준을 적용하되 손해배상책임을 연봉(또는 10만달러)선에서 제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이사 등 회사내부자를 수인자로 파악하여 신인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을 중단하고 별개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보다 현실에 부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