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블로그에서 미국 유학시절 “회사의 정치헌금”에 대한 글을 쓰던 때의 일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2011.8.11.자). 내가 따르던 Kummert교수가 논문주제를 듣고 너무 “철학적”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다소 의기소침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일이 있었던 1985년 당시 미국에서는 그 이슈에 관해서는 Brudney교수의 1981년 논문(Business Corporations and Stockholder Rights under the First Amendment, 91 Yale Law Journal 235)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논의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회사법과 세법의 전문가로 워낙 실무적 성향이 강했던 Kummert교수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다소 실망스럽기는 해도 놀랄만한 것은 아니었다.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2010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Citizens United판결을 선고한 후에는 사정이 180도로 변화하였다. 그 판결에 관한 글은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졌는데 그 중에는 Kummert교수의 기준에 따르면 “철학적인” 것들도 적지 않다. 오늘은 최근 발표된 매우 철학적인 논문 한편을 소개한다. David A. Skeel, The Corporation as Trinity(2022), Seattle University Law Review, Forthcoming. Skeel교수는 UPenn에서 도산법과 회사법을 가르치는 저명한 학자로 이미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예컨대 2022.2.2.자).
특이하게도 기독교에 관한 논문도 다수 발표한 바 있는 그는 카톨릭에서 신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3위 일체로 파악하는 것과 같이 회사도 법인과 경영자와 주주를 아우르는 일체로 파악할 것을 주장한다. 논문은 크게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법인격에 관한 법인의제설과 법인실재설의 대립에 대해서 조망한다. 미국에서 그 대립을 촉발한 계기가 된 대표적인 판결인 연방대법원의 Citizens United판결(2010)과 Hobby Lobby판결(2014)을 소개한다. 두 판결에서는 모두 회사를 그 구성원인 주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여 자연인과 마찬가지의 권리를 인정한다. 저자는 보수적 학자들은 회사구성원인 개인을 중시한 나머지 회사의 권리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하여 진보적 학자들은 반대로 회사의 권리보다는 책임에 초점을 맞춘다고 주장한다.
II장에서는 자신의 삼위일체적 회사觀을 제시한다. 먼저 법인격에 관한 학설대립과 관련하여 법인의제설과 법인실재설에 대해서 설명한다. 저자에 의하면 유명한 실용주의 철학자인 John Dewey가 1926년에 발표한 논문(The Historic Background of Corporate Legal Personality, 35 YALE L.J. 655)에서 이들 학설이 반드시 결론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후 미국학계에서 그 논의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저자는 의제설이냐 실재설이냐에 따라 구체적인 문제의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Dewey의 견해에 동조한다. 저자는 의제설과 실재설의 대안으로 삼위일체적 회사관을 카톨릭의 삼위일체론으로부터 도출하여 구성한다. 그는 회사는 이러한 삼위일체적 특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규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회사는 반드시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소수의 회사가 특정산업을 지배하는 경우와 같이 필요한 경우에는 엄격한 규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
끝으로 III장에서는 삼위일체적 회사관이 다음과 같은 쟁점에 관해서 어떠한 함의를 갖는지를 검토한다: ①폐쇄회사의 법인격; ②노동조합과 같은 비회사조직도 법인격을 갖는지 여부; ③회사도 종교적 정체성(religious identity)를 갖는지 여부; ④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다양한 권리를 회사가 누리는지 여부; ⑤회사의 정치적 활동. 마지막 ⑤에 관한 부분은 내 논문인 “회사의 정치헌금”과 관련해서 특히 흥미를 끈다. 그 논문에서 나는 주주의 정치적 의사가 동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회사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택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Brudney의 견해에 입각한 것인데 저자는 그러한 견해에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