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분쟁과 신주의 불공정발행

경영권분쟁이 진행 중인 회사에서는 기존 경영진이 우호세력에 신주를 배정함으로써 경영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사례가 간혹 발생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례가 종종 발생한 바 있지만 최근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은 한진칼사건이다. 일본에서는 경영권방어수단이 우리보다 폭넓게 허용되고 있다 보니 이제 단순한 제3자배정증자를 통한 경영권방어는 실무상 중요성이 크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과거에는 제3자배정증자를 통한 경영권방어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했고 그와 관련하여 형성된 이른바 주요목적기준은 우리 실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은 주요목적기준에 대한 최근 논의를 정리한 일본 문헌을 소개한다. 久保田安彦, 支配權爭いと不公正發行, 論究會社法(田中亘 外 편집 2020) 325면 이하. 저자는 케이오대학의 상법교수이다.

논문은 불공정발행에 관한 대표적 판례 두 건을 다룬다. 판례1은 벨시스템사건이라 불리는 2004년 동경고등재판소결정으로 주요목적기준을 적용한 사례이다. 주요목적기준이란 신주발행의 여러 동기 중에서 경영권확보와 같은 부당목적이 다른 동기보다 우월한 주요목적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불공정발행을 인정하는 기준이다. 판례1의 신주발행에서는 경영권분쟁을 종결하려는 목적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자금조달의 필요성과 합리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 그것이 주요목적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불공정발행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한편 판례2는 유명한 일본방송사건으로 같은 재판소의 2005년 결정이다. 판례2의 사안에서는 신주 대신 신주예약권이 발행된 것을 제외하면 마찬가지로 경영권확보의 목적이 존재하였음에도 법원은 불공정발행을 인정하였다.

저자는 두 판례의 결론이 달라진 이유를 검토하며 판례2는 판례1과 기본적으로 다른 전제에 입각한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즉 판례2에서 법원은 경영권의 향배는 주주총회에서의 이사선임을 통해서 주주가 정해야 된다는 정책을 택하였고 그에 따르면 피선임자인 이사가 선임자인 주주구성을 변경함으로써 경영권다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식발행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그런 조치가 허용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에 한정되고 특별한 사정의 존재는 회사가 증명해야 한다. 판례2에서는 특별한 사정의 예시로서 이른바 “남용적 매수자”의 4가지 유형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예외는 극단적인 경우로 범위가 상당히 좁은데 저자는 예외는 좁게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에 따르면 회사의 가치라는 기준에서 어느 쪽이 경영권을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한가와 같이 고도의 경영판단이 요구되는 기준은 적용할 여지가 없다. 이처럼 법원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해석을 택하는 근거로 저자는 법원의 심사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법원이 경영판단에 개입하는 경우에 발생할 문제점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른바 “공정담보조치”가 실무상 채택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공정담보조치”란 독립성 있는 사외이사들로 하여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판단을 내리게 함으로써 경영권분쟁에서 발생하는 경영자의 “구조적인 이익충돌”을 회피하는 방안이다. 저자는 이러한 절차적 접근방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다소 회의적이다. 실제로는 이런 공정담보조치도 “장식”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불신도 이해가 간다.

다시 주요목적기준으로 돌아가자면 주요목적기준에 대해서는 당초부터 비판이 많았다. 최근에도 마츠나카(松中)교수 같은 이는 폐지론을 주장한 바 있다. 저자도 주요목적기준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증자의 정당목적과 부정목적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주요목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가 치밀하게 사업계획, 투자계획을 준비하여 정당한 목적의 존재를 주장하는 경우에는 법원이 그것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일본에서의 논의는 우리 한진칼사건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점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법원은 KCGI측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며 결국 한진칼 증자의 경우 정당목적이 더 크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법원이 제시한 구체적인 근거가 설득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나아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법원이 과연 회사의 경영판단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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