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국 회사법상 경영판단원칙을 거시적으로 조망한 짤막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Paul B. Miller, Fiduciary Liability and Business Judgment, Martin Petrin and Christian Witting, eds., Research Handbook on Corporate Liability (Elgar, Forthcoming) 저자는 노트르담 로스쿨 교수로 fiduciary법 분야의 업적이 많다.
이 글이 처음 눈길을 끈 것은 미국의 경영판단원칙이 미국에 특유한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이었다. 경영판단원칙과 같이 경영자의 재량을 보호하는 원칙은 자본주의국가라면 어디서고 필요한 것이고 우리나라도 그에 상응하는 원칙이 판례법상 채택되어 있다고 강의해왔던 나로서는 그 부분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글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도 저자의 주장에 완전히 설득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 자체는 미국 회사법의 전반적인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다.
저자는 경영판단원칙이 두 가지 비교의 측면에서 독특하다고 주장한다. ①하나는 앞서 지적한 비교법적인 독특성이고 ②다른 하나는 fiduciary법상 회사이사가 아닌 다른 fiduciary의 경우에는 그런 원칙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논문의 목적은 회사이사의 신인의무와 관련하여 경영판단원칙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본문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은 이사의 신인의무와 그 위반 시의 책임에 관한 델라웨어주법을 조망한다. II장은 경영판단원칙에서 보호하는 경영판단의 범위를 살펴본다. III장에서는 경영판단원칙의 의미에 관한 두 가지 다른 견해를 소개한 후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다. IV장에서는 이러한 경영판단원칙이 이례적인 것인지 여부와 이례적이라면 어느 범위에서 그러한지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II장에서 경영판단의 범위는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 경영판단의 주체와 관련하여 저자는 경영판단원칙은 회사에 대해서 fiduciary권한을 갖는 주체에 주어진 재량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란 점에서 그런 권한을 갖는 이사나 임원(officer)의 판단만을 보호대상으로 본다. 둘째, 보호대상인 “경영상의” 판단은 회사의 사업목적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이사의 부정행위나 개인적인 행위가 보호대상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셋째, 보호대상인 경영상의 “판단”이란 fiduciary의 숙고에 따른 행동이다. 따라서 ①부주의나 무관심에 기인한 부작위와 같이 숙고와 무관한 부작위, ②우유부단 끝에 취한 행위, ③자동적이거나 성급하게 취한 행위와 같이 숙고와 무관한 행위 등은 보호대상이 아니다.
III장은 경영판단원칙에 대한 해석이 각양각색임을 지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두 가지의 유력한 해석을 소개한다. ①하나는 그것을 책임에 관한 원칙으로 이해하여 fiduciary책임의 부존재의 추정이라고 보거나 경과실 대신 중과실을 요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②다른 하나는 Bainbridge교수나 Lyman Johnson교수 등이 지지하는 견해로 그것이 법원의 심사만을 제약하는 “자제의 법리”(abstention doctrine)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두 가지 견해를 모두 비판하면서도 ②의 견해에 기우는 편이다. 즉 그는 자신의 견해를 관할권적 자제법리(jurisdictional abstention doctrine)이라고 命名하는데 여기서 관할권이란 fiduciary의 권한사항에 대해서는 법원의 권한이 제한된다는 점을 가리킨다.
IV장에서 저자는 미국법상의 경영판단원칙에 보편적인 측면과 이례적인 측면이 공존한다고 주장한다. 보편적인 측면이란 경영자의 재량을 법원이 존중한다는 점이다. 이런 법원의 존중은 우리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존재한다. 이례적인 것은 그러한 법원의 존중이 다른 나라에서는 비공식적인데 비하여 미국에서는 경영판단원칙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