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유한책임의 역사적 고찰

개인적으로 역사는 좋아하지만 정작 전공과 관련해서는 역사적 접근방법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회사법이나 자본시장법이 모두 법경제학과 같은 기능적 분석이 두드러진 분야라는 핑계로 역사적 고찰을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오늘은 이런 평소의 태도를 조금이나마 반성하게 만든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Ron Harris, A new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limited liability: an invitation for theoretical reframing, Journal of Institutional Economics, Volume 16 Issue 5 (2020) 저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법대에서 학장까지 역임한 법제사학자이다. 법대는 졸업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줄곧 역사를 전공한 분으로 경제영역에서의 법적 발전에 관한 역사적 연구업적이 많다. 특히 최근에 나온 회사의 기원에 관한 단행본은 널리 주목을 받았다. Going the Distance: Eurasian Trade and the Rise of the Business Corporation 1400–1700,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0)

대상논문은 주주유한책임원칙이 정착된 역사적 과정을 조망하고 그에 관한 잘못된 몇 가지 통념을 바로잡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유한책임원칙은 주식회사가 처음 등장한 1600년경이나 유한책임법이 제정된 19세기 중엽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늦은 1930년대에야 비로소 정착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주식소유의 분산과 주식시장의 발전은 유한책임의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고 유한책임원칙에 선행해서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유한책임원칙은 어느 특정시점에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자리 잡은 것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유한책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시대를 I부터 III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시대I은 주식회사가 탄생한 1600년경에서 1800년경까지, 시대II는 1800년경에서 1900년경까지, 그리고 시대III은 1900년경에서 현재까지를 가리킨다. 시대I에서는 부채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주의 유한책임은 논의될 여지도 없었다. 유한책임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시대II에서인데 이 시대의 유한책임은 현재와 같은 단일한 형태의 완전한 유한책임이 아니라 책임의 제한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현재와 같은 완전한 유한책임원칙이 자리 잡은 것은 시대III으로 그러한 전환은 1900년에서 20세기 중반사이에 진행되었다.

논문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시대II에 대한 서술이다. 저자는 시대I에서는 주주의 책임이 논의될 여지가 없었지만 II로 넘어가는 1780년에서 1830년 사이에 주주가 회사채무에 대해서 책임을 질 가능성이 생겨났다. 주주의 책임은 전면적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인정되는 범위에 차이가 있었다. 의회의 특별입법에 의한 회사설립의 경우에는 기업가들과 의원들사이의 협상에 따라 주주의 책임을 인정하는 조항이 법률에 포함되었다. 일반 사업회사법은 1811년 뉴욕주가 처음 채택하였는데 유한책임을 정한 조항이 들어있었지만 당시 법원은 주주의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주주의 유한책임을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는 주에서도 경제성장을 급속히 진행되었고 회사 수도 급증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회사들 사이에서 유한책임원칙이 정착한 것은 1880년에서 1930년 사이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20세기 초에 법인격부인법리가 등장한 것은 당시 확산된 유한책임원칙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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