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규제의 재검토

전에도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서울대 상법교수들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교수들과 수년전부터 학술교류를 갖고 있다. 코로나 사태이후에는 ZOOM 화상회의를 이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교류가 훨씬 활발해진 감이 있다. 지난 목요일에는 증권법의 권위자인 스티브 최교수(NYU)가 모처럼 발행시장규제에 관한 이론적 논문을 발표했는데 오늘은 그것을 소개하기로 한다. Stephen J. Choi & Adam C. Pritchard, All Stick and No Carrot? Reforming Public Offerings (2022). (논문은 본문 38페이지로 그렇게 긴 것은 아니지만 콜롬비아대 블로그에 업로드된 저자들의 포스트에 잘 요약되어 있다.)

논문은 비공개회사가 공개회사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한 규제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공개과정에 대한 규제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투자자보호라고 하고 있지만 투자자보호를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규제준수의 부담은 발행회사만이 아니라 결국 투자자에게도 귀속된다는 점에서 저자들은 발행회사와 투자자의 공동후생을 최대화하는 것을 제도설계의 기준으로 삼는다.

저자들은 증권신고서제도, 감독당국의 심사, 부실공시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규정한 증권법 11조 등 기존의 기업공개규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공모라는 “거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찾는다. 기존 규제에 따른 전통적인 기업공개에서는 발행회사는 저가발행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입고 그 이익은 일반투자자가 아니라 인수인과 기관투자자들이 차지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전통적인 기업공개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SPAC과 사모를 통한 直상장(direct listing)이다. 양자는 모두 공모규제의 적용을 피하기 위하여 공모라는 거래와는 다른 통로로 공개회사로의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양자는 모두 크게 증가하였으나 그에 대해서는 공모규제의 적용을 받지 못함에 따라 투자자보호가 미흡하다는 비판이 가해졌다. 특히 SPAC에 대해서 SEC는 기존의 공개규제를 모델로 삼아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비판하며 오히려 발행회사의 선택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시장의 “정보효율성”(informational efficiency)과 (투자자보호로 인한 비용편익의) “내부화”(internalization)이란 개념이다. 정보효율성 있는 시장은 거래규모와 시가총액이 커서 기관투자자와 애널리스트의 관심을 끄는 상장기업의 경우에 존재한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전문가들의 참여로 결정되기 때문에 그 신뢰도가 높고 이런 주식을 거래하는 소액투자자들은 자동적으로 보호된다. 이런 시장에서는 발행회사가 정보제공과 같은 투자자를 위한 보호조치를 취하는 경우 시장에서 그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행회사가 그 비용과 편익을 내부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발행회사는 자신과 투자자의 공동후생을 최대화하는 행동을 할 인센티브가 있고 따라서 규제의 필요도 감소한다.

문제는 스타트업과 같은 비공개기업에 대해서 어떻게 그러한 정보효율성 있는 시장을 조성할 수 있는가이다. 저자들은 공모라는 “거래”의 형태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기업공개규제 대신 공개를 원하는 회사의 정보환경(information environment)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정보효율성이 없는 상황에서 발행회사는 SPAC이나 사모에 이은 직상장을 통해서 일반투자자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SEC가 이러한 대안적인 공개수단에 대한 규제를 공모규제에 유사한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구체적으로 저자들은 전통적인 공개절차를 피하고자 하는 발행회사에 ①사전적 옵션과 ②사후적 옵션의 두 가지 옵션을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양자는 모두 정보환경의 개선을 노린 것이다. ①은 直상장과 관련된 것으로 회사가 일종의 대기기간(seasoning period)동안 계속공시를 통해서 시장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보환경을 개선하면 전통적인 기업공개절차를 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②는 회사가 ①을 택하지 않는 경우 공개회사가 된 후에 제출하는 Form 10Q를 비롯한 계속공시정보에 대해서도 엄격한 증권법 11조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②를 “지금은 거래를 허용하지만 중대한 부실공시에 대해서는 나중에 책임을 져라”라는 사고라고 설명한다.

이 논문은 현행 규제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나 비판을 넘어서 정보효율성에 토대를 둔 새로운 체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현행 규제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한 독자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논문에 딤긴 공모규제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관점에 대한 설명은 현재 미국 자본시장에서 진행 중인 변화와 그에 대한 규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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