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회사법학의 자기성찰

오늘은 독일 회사법분야의 권위 있는 저널인 ZGR 창간 50주년 기념호에 실린 Fleischer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Holger Fleischer, Selbstreflexion im Gesellschaftsrecht: „Hottest Game in Town“ oder „Death of Corporate Law“?, ZGR 2022, 466–493. 독일의 대표적 회사법학자인 저자가 독일학계의 현상황을 평가한 이 글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글의 본문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I장은 성숙단계에 들어간 독일 회사법학이 직면한 문제점을 고찰한다. 이어서 III장은 회사법의 기능이 전환되고 있는 현상에 초점을 맞춘다. 원래 비정치적인 회사법이 양성평등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정치적인 목적에 동원되는 현상을 살펴본다. 끝으로 IV장은 순수한 영리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거나 혼합적인 목적을 지닌 기업형태의 확산에 대해서 검토한다. 그중 개인적으로 특히 흥미로운 것은 II장이므로 이곳에서는 그 내용만을 간단히 소개한다.

II장에는 회사법학의 성장과 성숙이란 제목 하에 다음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된다. ①회사법학의 발전; ②회사법학의 위기를 보여주는 과도한 포만상태와 관심전환; ③회사법연구의 활성화 방안. ①에서 저자는 회사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이미 100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회사법의 봄”은 1960년대에 도래했다고 판단한다. 그에 의하면 이 무렵부터 회사법은 상법으로부터 해방되어 독자적인 법분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저자는 학문적인 진보는 교수자격논문(Habilitationsschrift)의 증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60년대에 발표된 수는 8개에 불과했지만 점점 늘어나 2000년대에는 43개로 늘어났다. 그는 1997년 미국의 Buxbaum교수가 회사법이 “hottest game in town”이 되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 말은 이제 독일에서도 타당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②에서 저자는 회사법에 관한 각종 문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과도한 포만의 위험이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것이 주석서의 폭증이다. 과거에는 주석서는 실무가들이 집필하고 대가들은 체계서에 몰두하였는데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주석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주석서는 주식회사법이 11종, 유한회사가 17종이 존재한다. 주석서의 수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부피도 증가해서 예컨대 경영이사회에 대한 주석은 주식회사법 Großkommentar 3판(1973년)은 179면에 불과했지만 5판에서는 무려 1387면에 달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주석서의 폭증을 은총인 동시에 저주라고 평가한다. 주석서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내용이 결국 대동소이하므로 집필자들의 연구역량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석서는 실무계의 수요를 고려하다보니 독창성은 덜 발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회사법에 대한 연구가 포화상태에 이름에 따라 새롭게 각광을 받는 분야로 저자는 금융법과 자본시장법을 꼽는다. 저자는 이들 법분야가 — 마치 회사법이 상법으로부터 독립한 것과 마찬가지로 — 전통적인 회사법으로부터 독립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③에서는 전통적인 회사법의 연구를 활성화하는 방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밝힌다. 저자는 회사법학자들이 직면한 과제를 외부로부터의 과제와 내부로부터의 과제로 구분한다. 외부적 과제의 예로 디지털化, 인공지능, 지속가능성 등을 든다. 내부적 과제와 관련해서 저자는 회사법적 현상을 그것을 에워싼 문맥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보다 충실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예컨대 회사법의 규정이나 판례를 그 역사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 등과 관련지어 종합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기존 연구의 예를 몇 가지 제시하였는데 그중에는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Talley교수의 논문(2021.3.19.)과 Hopt교수의 논문(2022.4.30.)이 들어있어 반가웠다. 다만 저자는 독일 학자들의 양성과 성장과정을 감안하면 회사법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과학적 연구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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