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권한의 위임에 관한 일본에서의 논의

과거 우리 상법은 일본 상법의 강력한 영향 하에 제정되었던 터라 일본의 판례와 학설은 우리 법의 해석에도 거의 그대로 원용되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법이 점차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됨에 따라 – 그리고 우리 법학계와 실무계의 독자적 역량이 향상됨에 따라 – 일본에서의 논의에 눈길을 덜 돌리게 되었다. 특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바로 2005년 일본 회사법의 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회사법의 제정으로 양국의 회사법은 구체적 내용은 물론이고 구조나 형식의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그 차이는 지배구조, 특히 기관구조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 회사법상 허용되는 기관설계의 형태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양국의 경제발전수준이 접근한 탓인지 양국이 직면한 이슈는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로서는 일본의 논의를 참고할 필요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런 관점에서 商事法務 최근호에 실린 글 한편을 소개한다. 津野田一馬/河島勇太, 監査役会設置会社に関する規律の見直し ─取締役会専決事項の範囲を中心に─(2310호 2022.11.15.) 15면, 이 글은 전에도 한번 언급한 상사법무의 “회사법ㆍ가버넌스의 과제”시리즈의 제4편으로 앞의 저자는 오오사카대학 교수이고 뒤의 저자는 변호사이다.

위 글은 이사회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한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대법원은 이사회규정이 자산총액의 10%이상에 상당한 자산의 처분만을 결의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회사가 자산총액의 5% 정도의 자산을 이사회 결의 없이 처분한 사안에서 그것이 중요한 자산의 처분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표이사에게 위임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5다3649판결). 이처럼 사적조정을 제한하는 대법원의 엄격한 태도는 감독형 이사회를 실천하는 것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위 글에서 저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나와 비슷한 견해를 제시한다.

일본법상으로는 이미 이른바 지명위원회등설치회사와 감사등위원회설치회사의 경우 대폭적인 권한위임이 인정된다. 문제는 아직도 상장회사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감사회설치회사의 경우에 발생한다. 감사회설치회사의 이사회권한에 대해서는 우리 상법 제393조 제1항과 비슷한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2019년 회사법 개정 시에 대폭적인 위임이 가능한 방향으로 그 규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찬반이 갈리는 바람에 통과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위 글에서는 그 논의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정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제시된 다음의 논리는 우리의 경우에도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①법원이 이사회결의사항의 범위를 어느 정도 엄격하게 해석할 것인가를 예견하는 것이 어렵고 중요성이 낮다고 생각되는 사항이 이사회의 결의사항으로 상정되어있다는 점; ②회사의 사업내용에 반드시 정통하고 있지 않은 사외이사가 개별의 업무집행의 결정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으면 아니 됨에 따라 기동적인 업무집행의 결정이나 업무집행자의 감독이 방해될 우려가 있는 것.

감독형 이사회모델을 추구하지 않는 회사라면 이사회의 권한위임의 필요성이 높지 않을 것이다. 위 글에서는 최근 사외이사에 대한 규율이 변경됨에 따라 사외이사의 비중이 현실적으로도 크게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2019년 개정회사법이 일부 공개회사에 대해서 사외이사 선임을 강제한 것도 특기할만하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021년 개정된 지배구조코드이다. 그에 따르면 이른바 프라임시장에 상장된 회사는 독립사외이사를 3분의1이상 선임할 것이 요구되고(원칙 4-8), 특히 지배주주가 있는 회사는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성을 지닌 사외이사를 과반수 선임하거나 독립사외이사를 포함하여 독립성 있는 자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보충원칙4-8③). 이는 사외이사에 관해서 오래 동안 유보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던 일본이 그간 상당히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것이다.

위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위임범위를 확대하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입법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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