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L 번역기 체험담

지난달 동경에 들렀을 때 오래전부터 각별한 이와하라(岩原紳作)교수가 3월말로 동경대에 이어 두 번째 직장인 와세다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내게 베풀어준 호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고민하다 3년 전 이 블로그에 올렸던 落語에 관한 글(2020.4.5.자)을 일본어로 옮겨 보내 보기로 결정했다. 그 글의 주인공은 물론 그가 아니라 그의 스승인 타케우치(竹內昭夫)교수지만 본인에 대한 언급도 있을 뿐 아니라 정년을 맞는 그에게 작고한 옛 스승에 대한 회고담을 전하는 것도 의미가 없진 않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결정의 배후에는 번역작업의 어려움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속셈이 깔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내 일본어실력으론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번역기의 힘을 빌릴 요량이었다. 마침 얼마 전 아들로부터 DeepL이란 프로그램이 좋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어 이 기회에 그 기능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래아 한글 파일의 글을 조금씩 잘라서 번역기에 붙여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번역기를 살펴보니 파일을 통째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평소 관심 없이 지나쳤는데 그것은 구글 번역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문서의 파일형식이 워드나 pdf형식으로 제한되어 아래아 한글파일은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허탕치는 셈치고 아래아한글파일을 워드파일로 전환하여 DeepL에 업로드해보았다. 약간의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마침내 컴퓨터 화면에 새로운 일본어 워드파일이 생겨났다. 과연 정말로 본문이 전부 옮겨졌을까? 옮겨졌다면 과연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 파일을 여는 짧은 순간 오래만에 내 가슴은 두근두근했다. 파일을 열어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원고지 30장이 넘는 제법 긴 글이 (한 군데를 빼고는) 말끔히 번역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그 수준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부터 원문을 대조하며 검토해보니 군데군데 본의가 조금 잘못 표현되거나 누락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적어도 나로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표현으로 가득했다. 그간 몇 차례 내곁을 스쳐간 원어민 번역자들의 솜씨에 비하더라도 별로 손색이 없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이제 적어도 우리의 견해를 일본어로 옮기는 것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겠다는 낙관적인 전망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홀연 이제 거꾸로 이 번역기를 이용하면 우리말을 모르는 일본학자라도 우리 논문을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다.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야 이미 고개를 넘었지만 젊은 학자들은 좀 더 분발할 필요가 있겠구나라는 뻔뻔한 생각으로 걱정을 멈췄다. DeepL의 효능을 직접 느껴보고자 하는 독자를 위해 참고로 DeepL로 옮긴 일본어 번역본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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