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특히 기업법 분야에서 논의되는 이슈의 면에서 우리나라와 선진국 사이의 차이는 크게 줄어든 느낌이다. 그래도 여전히 상당한 거리를 보이는 것이 기업집단, 특히 우리나라의 재벌과 같이 상장자회사를 여럿 포함하는 기업집단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외국학계에서 그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는 경우에는 반가움을 금할 수 없다. 오늘은 모처럼 그런 논문을 한편 소개한다. Luca Enriques & Sergio Gilotta, Justifications for Minority-Co-Owned Groups and Their Corporate Law Implications, Theoretical Enquiries in Law journal (forthcoming 2024), 저자들은 모두 이태리출신으로 특히 Enriques교수는 현재 옥스퍼드대학에 재직하는 세계적인 학자이다. 논문의 대상인 Minority-Co-Owned Groups은 소수주주가 존재하는 계열회사를 보유한 기업집단을 가리킨다. 이러한 기업집단은 실질적으로 우리 재벌과 별 차이가 없으므로 재벌형 집단이라고 부름으로써 최상층의 지주회사와 하층의 완전소유자회사들로 구성된 순수형 집단과 구분하기로 한다. 실제로 저자들은 논문의 서두에서 재벌형 집단의 대표적인 예로 삼성그룹을 든다. 재벌형 집단이 터널링을 비롯한 이익충돌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에 따르면 그것이 주주전체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정당화하는 다섯 가지의 논리가 존재한다. ①기업의 투명성을 높힘으로써 자본비용을 낮춘다. ②자회사경영자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함으로써 대리비용을 감소하고 자본비용을 절감한다. ③차등의결권주식에 대한 회사법적 제한을 회피한다. ④외국회사에 의한 인수를 촉진한다. ⑤재벌형 집단은 경로의존성과 보다 효율적인 조직구조로 이행하는데 소요되는 높은 비용 때문에 존재한다. 만약 이상의 논리가 타당한 것이라면 피라밋구조의 금지와 같은 재벌형 집단에 대한 과격한 개혁안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고 집단내부의 거래에 대한 회사법적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규제완화의 사례는 이미 현실적으로 입법이나 판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계열회사 이사로 하여금 개별 회사를 넘어 그 회사가 속하는 집단의 이익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신인의무를 완화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저자들은 재벌형 집단을 정당화하는 위의 논리가 기업집단에서의 내부거래에 대한 회사법적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본론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I장에서는 기업집단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과연 재벌형 집단까지 정당화하는지 여부를 검토한 후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II장에서는 재벌형 집단이 주주전체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고 위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논리를 차례로 검토한다. III장에서는 그 다섯 가지 논리가 내부거래에 대한 회사법적 규제를 완화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