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법이나 자본시장법 분야에서도 소프트로의 확산은 이제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그 현상은 우리나라에 비하여 특히 일본에서 두드러진다(최근의 예로 2023.10.31.자 포스트 참조). 소프트로의 위상이 날로 높아가는 상황에서 그것을 회사의 운영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는 회사법상 중요한 논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한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大杉謙一, ソフトローと取締役の義務 ─東京電力株主代表訴訟事件・東京地裁判決を参考に─, 旬刊商事法務(2341호 2023.11.5.) 4면. 저자인 오오스기교수는 일본 중앙대학에 재직하는 중견 회사법학자이다.
논문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물질유출사고에 따른 동경전력의 손해에 대한 이사의 배상책임을 구하는 주주대표소송에서 동경지방재판소가 내린 판결을 소재로 한다. 판결 자체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논문의 절반 이상이 그 판결요지의 설명에 바쳐지고 있지만 실제로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소프트로와 이사의 의무에 관한 저자의 견해이다.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이사는 법령의 테두리 내에서 회사이익을 극대화할 의무가 있다. 저자는 이사가 준수할 규범이 하드로(hard law)인 법령 외에 소프트로까지 포함하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
소프트로는 회사의 준수가 강제되지는 않는데 저자는 그 중의 일부를 프린시플(principle: 원칙)이라고 부르며 한 단계 높은 규범력을 부여한다. 그는 소프트로 중에서 특히 행정청이 그 책정에 관여하고 그것을 행정지도의 도구로서 활용하는 경우에는 프린시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저자는 그런 프린시플의 경우에는 국법질서에 편입된 것으로 보아 법령과 마찬가지로 이사가 회사이익의 극대화라는 목표에 우선하여 준수해야 한다고 본다. 즉 이사는 프린시플을 존중할 의무를 부담하며 이 의무는 선관주의의무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본다. 저자는 회사이익 극대화 의무의 이행에는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지만 프린시플을 존중할 의무의 이행에 대해서는 좁은 폭의 재량만이 인정된다고 지적한다.
동경전력판결에서 법원은 이사들의 임무해태를 인정하면서 이사들에게 13조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였다. 법원은 규제당국인 원자력안전보안원과 회사사이의 장기간 수차에 걸친 원전안전에 관한 의견교환을 통해서 방사능유출사고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이사들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구체적인 법령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이 판결은 결국 프린시플을 존중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 이사들의 임무해태로 판단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끝으로 저자는 이러한 프린시플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토대로 ESG와 같은 다른 사회규범과 관련한 이사의 의무를 검토한다.